[창간 33주년 특집3-Let`s SEE Eco system] 갑을만 있고 상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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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형 스마트폰 제조사 부품 협력기업 A사는 스마트폰 모델 부품을 납품했다가 당초 예상보다 공급 물량이 적어 손해를 입었다. A사 예측보다 제조사가 예상한 물량이 훨씬 많아 어렵게 생산설비를 증설했는 데 빗나간 것이다. 발주처 요구에 맞춰 설비를 무리하게 증설한 터라 손해분을 보상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려운 경영 상황을 간신히 빠져나온 A사는 이후 새로운 모델용 부품 공급이 많아질 테니 증설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대응하지 않았다.

표. 국내외 소재 기업 비교
표. 국내외 소재 기업 비교

#2. 소재기업 B사는 반도체 대기업의 오랜 협력사다. 반도체 대기업이 과거 극심한 경영난을 겪을 때 자사 경영난을 감수하며 납품 단가를 낮췄다. 이후 대기업이 최대 실적을 올렸지만 한 번 낮아진 납품 단가는 올를 줄 모른다. B사 임원은 “회사가 존폐 기로에 놓일 정도로 어려울 때 고난을 함께했던 수많은 협력사가 있는데 지금은 실적이 좋아져도 그동안 누린 혜택을 되돌려주려는 인식이 없는 것 같다”며 “당시 어려움을 나누는 데 동참했던 협력사들은 각자 살길을 모색하는 상황”이라고 분개했다.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오랜 갑을 관행은 지금도 남아있다. ‘상생’은 협력 기업이 느끼기에 낯선 단어다. 중장기적으로 추진하는 첨단 기술 선행 개발에 국내 기업 참여도가 높아졌다지만 극히 제한적이다.

심지어 새롭게 개발한 기술과 제품이 내부 품질 테스트를 통과해도 ‘우리 협력사 리스트에 없는 회사’라는 이유로 공급을 거절당하는 사례도 있다. 국내 반도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상생’과 ‘생태계’는 소수 협력사만 누리는 ‘그들만의 리그’에 머문다.

◇한국 D램 세계 재패해도 위상 걸맞은 후방기업은 없어

국내 반도체 후방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우수한 D램 성적에 가려진 ‘그늘’을 우려한다. 세계 D램시장 절반 가까이 국내 기업이 공급하지만 정작 이에 걸맞은 위상을 가진 후방기업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연간 매출 1조원대 장비 자회사 육성에 나섰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쟁쟁한 기술력으로 무장한 해외 장비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은 먼 현실이다.

업계는 세트와 부품이 함께 성장하지 않으면 미래 경쟁력을 갖추기 힘든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판단한다. TV 산업은 국내 기업이 디스플레이를 제조해 납품했고 이를 바탕으로 가격과 기술 경쟁력을 모두 갖추면서 해외 유수 TV 제조사를 꺾고 국내 기업들이 시장 선두를 탈환했다. 부품과 세트가 모두 세계 선두로 올라서는데 가장 적합한 전략이다.

디스플레이 제조장비는 일본 브랜드 의존도가 높다. 하지만 반도체 장비시장보다 상대적으로 국내 디스플레이 장비 기업 납품 비중이 높고 OLED 디스플레이 등 첨단 분야에서 국내 기업과 협력도 긴밀하다.

반면 반도체 장비는 외산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3D 낸드플래시, 시스템반도체, 20나노급 미세공정 D램 등 장비를 공급할 수 있는 국내 장비사는 몇 개 없다.

시스템반도체 설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과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직접 개발하던 중소 팹리스(반도체설계) 기업은 모두 사업에서 손을 뗐다. 대기업과 협업할 기회가 없고 오히려 시장에서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좋은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는 회사가 있으면 전략적으로 인수합병(M&A)해 공생해야 하는데 국내 대기업들은 사람만 빼갈 뿐 기업에 투자하지 않고 되레 경쟁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해외 스타트업은 비싸게 인수하면서 정작 국내 기업을 인수하지 않는 것은 인수 후에 대우, 복지 등 잡음이 불거지기 때문”이라며 “인수합병을 공생으로 보지 않고 ‘중소기업 죽이기’로 보는 국내 시장 편견도 대기업 국내 투자를 위축시키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반도체 후방기업 실적 비교(단위:억원)

※2014년 기준

[창간 33주년 특집3-Let`s SEE Eco system] 갑을만 있고 상생이 없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