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 기능을 현재 수준보다 더 높이는 것이 가능할까. SF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상상처럼 보이지만 실제 과학자들이 학계에 보고하고 있는 연구성과들을 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세계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 능력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로 뇌에 전기자극을 주는 방법(뇌 전기자극술)을 연구하고 있다. 뇌에 전기자극을 줘 기억력을 높이거나 거짓말을 못하게 하거나 치매나 뇌전증 등의 질병까지 완화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뇌 전기자극술은 뇌에 전기자극을 줘 질병의 증상을 완화하거나 뇌의 특정 기능을 강화시키거나 약화시키는 방법이다. 뇌 심부에 직접 긴 바늘형태의 전극을 심는 뇌심부자극술(DBS)부터 수술 없이 뇌의 두피에 전극을 붙여 뇌 심부까지 전기자극을 전달하는 경두개직류자극술(DCS)까지 다양한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뇌 자극하면 더 정직해진다
지난 4월 국제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는 뇌가 전기자극을 받으면 더 정직해진다는 내용의 연구결과가 실렸다. 스위스 취리히대, 미국 하버드대와 시카고대로 구성된 국제 공동연구진은 실험참가자 145명에게 머리에 헬멧형 전기자극 장치를 쓰게 했다.
이 헬멧에는 양극(+)과 음극(-)이 붙어 있는데 머리에 착용하면 전극이 두피에 부착돼 두개골 안쪽으로 전기를 흘려보낸다. 경두개직류자극(tDCS)이라는 방식의 뇌 자극법이다. 놀랍게도 헬멧을 착용해 뇌에 전기자극을 받은 실험참가자들의 거짓말이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연구진은 정직성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할 때 우뇌의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된다는 점에 착안했다. 전전두피질에 어떤 자극을 주면 정직성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이 헬멧을 머리에 쓰면 양극(+)이 닿아 있는 두피 아랫부분은 활성이 촉진되고 음극(-)이 닿아 있는 두피 아랫부분은 활성이 억제된다.
연구팀은 실험참가자들에게 헬멧을 씌우고 주사위 던지기 게임을 시켰다. 이 게임의 규칙에 따르면 주사위를 던져 홀수가 나오면 9스위스 프랑(약 1만원)을 받고 짝수가 나오면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주사위를 모두 10번 던지기 때문에 잘만 하면 최대 90프랑(약 9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참가자는 혼자 주사위를 던지고 이를 컴퓨터에 입력했다. 연구진은 정직성을 측정하기 위해 참가자들이 주사위 게임을 하는 공간에 카메라를 설치하지 않았다. 주사위를 던져 짝수가 나왔는데도 컴퓨터에 홀수가 나왔다고 거짓으로 입력해도 아무도 알 수 없다.
참가자는 총 세 그룹이다. 첫 번째 그룹(대조군)은 머리에 작동하지 않는 경두개직류자극 장치를 착용했다. 두 번째 그룹은 작동하는 양극의 경두개직류자극 장치를 착용했고 세 번째 그룹은 작동하는 음극의 경두개직류자극 장치를 착용했다. 참가자들과 연구자들 누구도 어느 그룹의 기기가 작동하는지 또는 음극이 작동하는지 양극이 작동하는지 알지 못한다. 거짓말 여부도 알 수 없다. 대신 주사위를 던졌을 때 돈을 벌 확률이 50%라는 것을 가정해 각 그룹의 정직성을 추론했다.
실험 결과,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던 첫 번째 그룹(대조군)의 성공률(홀수가 나올 확률)은 68%로 기댓값 50%보다 높았는데 '꽝'에 해당하는 짝수가 나왔을 때 37%는 홀수가 나왔다고 거짓 보고를 한 것으로 분석됐다. 양극 장치를 착용한 두 번째 그룹은 성공률이 58%였다. 기댓값 50%보다는 높았지만 대조군에 비하면 수치가 낮다. '꽝'인 짝수가 나왔을 때 15%만이 홀수가 나왔다고 답한 것으로 보인다. 음극 장치를 착용한 세 번째 그룹은 성공률이 67%로 대조군과 비슷했다. 연구진은 이 결과를 놓고 경두개직류자극에서 음극 전극이 양극 전극에 비해 인지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덜하거나 이미 거짓말의 비율이 꽤 높아 더 이상 나빠질 여지가 없다는 추측을 내놨다.
이 실험에서 중요한 것은 첫 번째 그룹과 두 번째 그룹을 비교했을 때 나온다. 첫 번째 그룹(대조군)은 37%가 짝수가 나왔을 때 홀수가 나온 것으로 거짓말을 한 것으로 분석된 반면 두 번째 그룹은 그 수치가 15%로 줄어들었다. 아무런 자극이 없었을 때보다 양극 전극으로 두피에 전기자극을 줬을 때 거짓말이 줄어들었다고, 즉 더 정직해졌다고 추론할 수 있다.
◇뇌 자극해 기억력 높인다
뇌기능이 떨어져 있을 때 전기자극을 주면 기억력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지난 4월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실린 연구성과를 보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마이클 카하나 교수 연구팀이 실험한 결과 뇌 기능이 떨어져 있을 때 뇌의 특정 부위에 전기자극을 주면 기억력이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약물불응성 뇌전증(간질) 환자 102명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뇌전증은 기억력 감퇴 증상을 보인다. 연구진은 피실험자들의 뇌가 고기능 상태일 때와 저기능 상태일 때를 나눠 전기자극을 가했다. 그 결과 저기능 상태일 때는 기억력이 향상된 반면 고기능 상태일 때는 평소보다 기억력이 악화됐다. 전기자극은 뇌기능이 떨어져 있을 때 기억력을 높여주지만 오히려 뇌 기능이 좋을 때는 해가 된다는 말이다.
이제까지 기억력과 뇌 전기자극 관계를 규명한 연구결과들을 보면 전기자극이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과가 모두 나와 학계에서 논란이 일었다. 그런데 이번 연구를 통해 전기자극으로 기억력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뇌에 자극을 주는 적절한 타이밍을 지켜야 한다는 게 밝혀졌다.
이번 연구는 기억 상실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기억 능력을 향상시키는 차세대 기술의 개발을 목표로 한 4년간의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기억 회복 프로그램(Restoring Active Memory Program)'의 일환으로 시행됐다. 연구진은 향후 알츠하이머병 같은 치매 환자나 외상성 뇌손상 환자의 삶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뇌심부자극술은 이미 임상에도 사용되고 있다. 뇌전증(간질), 파킨슨병, 수전증, 만성 통증, 틱장애, 우울증 등이 주요 대상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1997년 수전증 치료법으로 뇌심부자극술을 치료법으로 승인했고 2002년에는 파킨슨병 치료법으로 승인할 정도로 실제 임상에서 활용이 늘어나고 있다.
환자들에게 효과적이라는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으나 동시에 잠재적으로 심각한 부작용과 합병증의 위험도 갖고 있다. 뇌 심부를 자극하기 위해서는 뇌의 두개골을 열어 뇌에 긴 바늘을 꽂기 때문이다. 두개골을 여는 위험, 바늘로 인한 뇌조직 파괴 및 감염이 가장 큰 문제다. 또 전극이 움직이면 치료 효과가 감소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중증 환자들에게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방법이 경두개직류자극술(DCS)다. 이 방법은 두개골을 열지 않고 두피에 전극을 붙여 뇌 심부까지 전기자극이 전달되도록 한다. 그러나 두개골이 전기자극을 막기 때문에 이 방법은 부작용은 적으나 치료 효과 또한 낮다. 전극으로부터 뇌 심부까지 전달되는 전기의 양은 10~2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경두개직류자극술의 단점을 보완하기 뇌에 준침습성 시술을 개발하고 있다. 두개골에 전극을 심어 두피에 붙인 전극으로부터의 전기 전달량을 늘리는 방법, 고주파를 뇌의 양쪽에서 흘려 치료를 원하는 부위에 저주파 전기자극이 도달하도록 하는 방법 등이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글 : 목정민 경항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