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준의 어퍼컷]'특허 포비아 vs 특허 생태계'

[강병준의 어퍼컷]'특허 포비아 vs 특허 생태계'

미국과 중국 무역 전쟁이 일촉즉발 상황이다. 미국은 500억 달러 규모 중국제품에 관세 25%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바로 중국도 같은 규모로 맞대응했다. 미국은 한술 더 떠 2000억 달러로 대상 품목을 늘렸다. 도박판 베팅(?) 레이스가 따로 없다. 진짜인지 거짓 '뻥' 카드인지 예측 불가다. 터지기 직전 시한폭탄이다.

시곗바늘을 앞으로 돌려보자. 미·중 무역전쟁 조짐은 지난해 말이었다. 포문을 연 건 미국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미국에 수천억 달러 손해를 입히고 수백만 명 일자리를 빼앗았다고 주장했다. 명분은 바로 지식재산(IP)이었다. 특허권, 실용신안권, 디자인권, 저작권 등을 중국이 무차별로 베낀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지식재산권 절도'를 막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쟁 선포 이면에는 미국 우선주의 즉 자국 이익이었지만 배경은 특허였다. 무역 전쟁이 특허 전쟁으로 보이는 이유다.

특허 경쟁력은 우리도 뒤지지 않는다. 특허강국 대한민국이다. 특허협력조약(PCT) 국제 출원 기준으로 미국, 일본, 유럽, 중국에 이어 세계 5위에 올라 있다. 기술만큼이나 좋은 특허가 경쟁력이라고 굳게 믿는다. 딱 거기까지다. 특허 등록 건수는 지식재산 5대 선진국(P5)이지만 보는 시각은 70년대 개발도상국 단계에 멈춰 있다. 특허는 '방어용'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사업과 기술을 보호하는 선에서 특허를 내고 관리한다. 당연히 권리행사도 소극으로 일관한다. 특허로 사업하는 기업을 '특허괴물'이라고 곱지 않게 바라본다. 특허 비즈니스가 걸음마 단계인데 선진국 수준 생태계가 만들어질리 만무하다.

17일(현지시간) 삼성전자와 KAIST IP(KIP) 소송 결과가 큰 이슈였다. 반도체 기술특허를 침해했다며 삼성에 4억 달러를 배상하라는 미국 법원 배심원 판결 때문이었다. 소송 결과는 예단하기 어렵다. 삼성이 판결을 뒤집을지, KIP가 승소할지 지켜봐야 한다. 소송 과정에 많은 변수가 있을 것이다. 재판 결과는 법원에 맡겨 둬야 한다. 하지만 'KIP'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KIP는 지식재산 전문기업이다. 쉽게 말해서 특허로 수익을 올리는 게 사업 모델이다. 라이선스 계약이든, 소송이든 특허 수익화가 목적이다. KAIST 서남표 총장 시절에 만들어졌지만 사실 존재감은 별로였다. 회사 설립 10년이 넘었지만 성과도 없었다. 그나마 인텔을 상대로 100억 원을 벌어들인 게 전부였다. 반전은 이때부터였다. 삼성·인텔·애플 소송이 알려지면서 소송을 지원하는 펀드가 달라붙기 시작했다. 이른바 '특허금융(파이낸싱)'이다. 특허 중심으로 생태계가 가동한 것이다.

과거 특허분쟁은 자금 싸움이었다. 기술이 좋고 특허가 훌륭해도 소송기간이 길어지면 중소기업이 불리했다. 선진국은 그렇지 않다. 바로 생태계 때문이다. 정부가 부쩍 관심을 많이 보이는 '기술 탈취'도 따져 보면 특허가 본질이다. 엄격한 규제와 처벌 필요하다.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하지만 지속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규제가 가진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결국 시장이다. 사업 아이디어와 기술을 인정해 주는 시스템이 먼저다. 특허 전문회사, 거래 시장, 기술 인수합병, 파이낸싱으로 이어지는 특허 생태계가 정답이다. '특허 포비아'를 없애는 방법은 생태계 조성뿐이다. 이미 선진국이 보여주었다. 철저한 장사꾼이자 협상의 달인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괜히 특허를 언급한 게 아니다. 앞으로 비즈니스는 특허 전쟁이다. 특허와 비즈니스는 앞바퀴와 뒷바퀴 관계다. 두 바퀴가 제대로 굴러가야 시원하게 달릴 수 있다.

전자/산업정책 총괄 강병준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