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경제전쟁]소재부품 R&D 전력투구해도 모자란데...기업 연구인력 수급 옥죄는 정부

[한일 경제전쟁]소재부품 R&D 전력투구해도 모자란데...기업 연구인력 수급 옥죄는 정부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전문연구요원 기업유형별 복무 인원중소기업 평균 연구원 수

# 반도체 감광액(포토레지스트) 기술 기업 A사는 일본 수출규제 대응 일환으로 연구개발(R&D)을 강화할 계획이지만 인력난을 우려한다. 대체 복무제도인 전문연구요원으로 상당수 R&D 인력을 채용하는 데 최근 국방부가 정원을 대폭 축소한다는 계획을 접했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연간 최대 5명 내외 전문연구요원 정원을 받고 채용에 나서도 중소기업인 탓에 2, 3명만 모집하는 상황”이라면서 “정원이 줄어든다면 실제 기업이 체감하는 인력난은 몇 배 더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 반도체 감광액을 제조하는 B사도 비슷한 우려를 표했다. 회사 관계자는 “석박사급 연구 인력의 중견, 중소기업 연구소 유입이 활발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문연구요원이 우수 연구인력 공급에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문연구요원을 거쳐 회사에 취업한 중진, 임원급 연구자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향후 회사 연구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일본 발 소재부품 쇼크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 R&D 활성화에 팔을 걷어 붙였지만 정작 중소기업 R&D 인력난을 심화시킬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 논란이다. 최근 국방부가 중소기업 R&D 인력 상당수를 책임진 전문연구요원 제도 정원 축소를 강행하려 하자 산업계는 정부 R&D 지원책이 반쪽짜리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병역 대상자가 군에 입대하는 대신 연구기관이나 산업체에서 근무하며 과학기술 연구에 종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현재 박사급 1000명, 석사급 1500명을 합쳐 매년 2500명을 선발한다.

국방부는 지난달 부처 협의에서 전문연구요원 정원의 단계적 감축 방안을 전달했다. 석·박사 정원을 현재 대비 절반으로 줄이거나 박사 정원을 유지하되 석사 정원을 3분의 2가량 감축하는 방안, 박사급 인력만 유지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계획대로라면 수년 내 전문연구요원 연간 정원은 최대 1500명 이상 줄어든다.

산업계는 정부가 일본 수출 규제 대응 차원에서 소재부품 분야를 비롯해 산업계 원천기술 경쟁력 강화에 화력을 집중하는 상황에서 국방부의 정원 감축 계획은 정책 실효성을 떨어트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일본 등 해외의존도가 높은 소재부품 관련 R&D 기업에 세제, 자금, 연구지원 강화, 기술 자립 추진 측면에서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근로, 화학물질관리 관련 규제 해소 등을 제공한다. 정작 가장 중요한 인력 측면에선 국방부가 되레 발목을 잡고 나서면서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평균 연구원 수는 2007년 8.3명에서 2017년 4.3명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30대 이하 연구원 중 석·박사 비중은 20대가 21.3%에서 14.2%, 30대는 58.9%에서 41.5%로 각각 낮아졌다.

산업계는 중견, 중소기업 R&D 인력 가운데 전문연구요원 인력 비중이 기업별로 10~50%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석·박사급 R&D인력으로 시야를 좁히면 전문연구요원 인력이 상당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 따르면 현재 중소기업이 채용한 20대 석·박사 연구인력의 70% 이상이 전문연구요원이다. 일본 수출규제로 이슈가 된 3대 품목을 포함한 소재부품 관련 기업 상당수가 전문연구요원에 R&D를 의존하는 구조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소재부품 분야 기업의 연구 인력 구조를 보면 전문연구요원 비중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국가 위기에 준하는 상황에서 산업계 R&D 인력 공급을 줄이는 정책은 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기협은 국방부 계획이 산업계 소재부품 R&D 인력 수급에 미치는 영향 파악에 나섰다. 산기협 관계자는 “소재부품 관련 대·중견·중소기업 R&D 인력 현황과 전문연구요원 비중을 파악 중”이라면서 “결과가 나오는 대로 통계를 제시하고 전문연구요원 정원 유지, 확대 필요성을 정부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기협은 6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산업계 전문연구요원 성과와 발전 토론회'를 열어 기업 우려를 수렴하고 제도 유지,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소재부품장비산업 자립화를 골자로 하는 R&D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면서 “자금이 투입되면 다 해결될 것 같지만 바로 인력문제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 연구위원은 “일본과의 문제가 해결돼도 미중 무역전쟁 등 굵직한 이슈가 기다린다”면서 “전시에 준하는 경제상황을 감안하면 전문연구요원을 통한 산업계 연구인력 공급은 충분히 타당성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나성화 산업통상자원부 과장은 “소재부품대책 이행에 있어 단기적으로 인력을 집중해야 한다”면서 “전문연구요원 정원이 감소하면 대책 이행에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했다.

최호 정책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