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7주년:기술독립선언II]걸음마 뗀 K-바이오, 전후방 산업 동반육성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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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에피스 연구진이 바이오시밀러를 연구하고 있다.(삼성바이오에피스 제공)
<삼성바이오에피스 연구진이 바이오시밀러를 연구하고 있다.(삼성바이오에피스 제공)>

일본 무역규제에도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이 성장기를 넘어 성숙기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독자기술 확보, 기술독립을 논의할 시점이 왔다. 의약품 원료부터 원부자재까지 전방위적 분석으로 기술 의존도와 국산화 가능성을 제시, K-바이오 육성 '백년대계(百年大計)'가 요구된다.

◇일본發 무역제제, 통제물품 100여종…영향은?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에 따른 통제 대상은 크게 미생물·독소류, 생물장비류로 구분된다. 미생물과 독소류는 보툴리눔 독소 생산균주, 탄저균 등 박테리아 22종, 황열과 두창 바이러스 등 바이러스 59종, 보툴리눔 독신 등 독소와 그 하위단위 16종, 식물병원균 19종, 유전자가 변형된 통제대상 미생물이다. 단 완제 의약품 형태 백신은 통제대상이 아니다.

생물장비류는 바이오의약품 생산에 필요한 장비가 포함됐다. 배양기, 원심분리기, 교차흐름 여과장치, 동결건조기, 보호장비, 생물안전캐비닛 등이다.

전문가들은 독소류나 미생물은 사실상 일본 무역규제 영향은 거의 없다고 분석한다. 일본을 제외하더라도 미국, 유럽 등 다양한 국가에서 대체 수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보툴리눔 독소 생산균주 등 일부 품목은 국산화가 오래 전에 진행돼 세계적으로 수출하는 품목이기도 하다.

제한적이나마 영향이 예상되는 것은 생물장비류다. 발효조나 바이러스 필터(여과기) 등은 일본 제품 점유율이 최대 90% 가까이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바이러스 필터는 생산 공정에서 불순물을 걸러내는 핵심 장비다. 일본 무역 규제로 우리나라 기업은 일본제품 수입을 위해 개별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역시도 대체가 가능하다. 대표적으로 셀트리온은 현재 사용 중인 아사히카세이의 바이러스 필터를 다른 국가 제품으로 교체할 예정이다. 여기에 일본에서 수입하는 원부자재 약 20종을 추가로 미국이나 독일 제품으로 교체를 진행한다.

세계 톱3 바이오의약품 생산 국가
<세계 톱3 바이오의약품 생산 국가>

◇원부자재 국산화 절실, 선택과 집중 전략 요구

영향이 미미하다 해서 단순히 일본산 제품을 다른 국가로 수입 대체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이번을 계기로 바이오 원부자재를 중심으로 한 국산화 논의가 필요하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비록 일본 무역 규제 영향이 적지만, 이번을 계기로 90% 가까이 수입하는 바이오 원부자재를 가만히 지켜만 볼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전후방 산업 육성과 함께 의약품이나 화장품 원료 등 수입 비중이 높은 제품도 국산화가 가능한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생물장비류와 같은 원부자재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바이오의약품 생산능력은 세계 2위권이지만, 세정제 등 소모품부터 생산장비까지 원부자재 대부분을 수입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바이오 원부자재 국산화율은 16%에 그친다.

국산화를 하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무조건 추진하기보다 시장성과 투자대비 효율성이 가장 높은 영역을 선택해야 한다. 특히 부가가치가 낮은 소모품이나 단순장비보다 생산 효율이나 가격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품목이 우선 검토돼야 한다.

권기성 셀트리온 연구개발본부장은 “냉장고, 원심분리기 등 비교적 단순한 장비는 국산 제품도 있지만, 우리가 국산화를 해야 하는 것은 정밀장비”라면서 “사실상 정밀장비도 글로벌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데, 단시간에 국산화가 어려운 만큼 현실적인 배지나 레진 등을 국산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배지는 미생물이나 세포 배양에 필요한 영양공급원이다.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가장 중요한 세포를 키우는 과정에서 '먹이' 역할을 한다. 이 역시 대부분 외산 제품을 사용하는데, 기술 장벽이 크지 않은데다 원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만큼 국산화 효과가 크다.

레진도 국산화가 필요한 품목이다. 이 제품은 배양 후 정제 과정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기능을 한다. 글로벌 기업 1~2곳에서 사실상 세계 시장을 독점한다. 일부 국내 기업도 개발했지만 외산과 비교해 여전히 보완할 부분이 많다는 게 업계 평가다.

국내 바이오산업 원부자재 국산화 현황
<국내 바이오산업 원부자재 국산화 현황>

◇장기적으로 정밀기기·원료도 국산화 필요

배지, 레진 등 단기간에 국산화가 가능하면서 효과가 큰 품목과 함께 장기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정밀기기도 국산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단 기술장벽과 함께 머크, 사투리우스 등 이미 시장에서 입지가 공고한 글로벌 기업이 있는 만큼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품목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이오의약품 개발 과정에 필수로 쓰는 자동정제기기나 흑광측정계, 질량분석기 등은 대당 6억~7억원이 넘는다. 국산제품도 있지만 기능과 신뢰도 문제 때문에 외면 받기 일쑤다. 완전한 국산화가 어렵다면 기존에 나온 국산 정밀기기를 선정, 고도화 혹은 실증을 지원하는 정부 지원 사업도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완제·원료 의약품 국산화도 논의가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에 따르면 뇌염백신과 경피용 BCG백신, 파상풍 백신, 백일해 백신 등은 일본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국가 제품으로 대체가 가능하지만, 대부분 국가 필수 의약품인 것을 감안하면 국산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해 11월 수급 문제가 생긴 BCG백신은 전량 해외 수입에 의존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BCG 등 필수 예방접종 백신을 포함한 백신 28종 중 국내 생산이 가능한 것은 절반도 채 안 되는 13종에 그치는 상황이다.

화장품 원료도 마찬가지다.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서 수입한 화장품 원료는 1억2489만 달러(약 1510억원)로 추정된다. 전체 수입 규모의 23.5%에 달한다. 대부분 선크림에 들어가는 고순도 이산화티타늄 분말이다. 일본 정부가 화장품 원료까지 수출 규제 대상으로 확대할 경우 제조과정 차질이 불가피하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나고야 의정서 발효 후 천연물 원료 수입에 따른 이익을 도입국에 공유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면서 “원료 자주권 확보 차원에서도 국산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표> 바이오 분야 일본 수출제한 품목

(자료: 한국바이오협회>

[창간 37주년:기술독립선언II]걸음마 뗀 K-바이오, 전후방 산업 동반육성 필요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