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30년 만에 바뀐 선거법...복잡한 셈법 속 총선전략 수정 불가피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 이번 임시국회 회기는 이날 밤 12시로 종료되며 자유한국당이 신청한 무제한 토론도 국회법에 따라 이때 자동 종결된다.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아래 오른쪽)이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의 선거법 개정 무제한 토론 도중 발언 자료를 화면에 띄워줄 것을 문희상 의장에게 요구하며 항의하고 있다.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 이번 임시국회 회기는 이날 밤 12시로 종료되며 자유한국당이 신청한 무제한 토론도 국회법에 따라 이때 자동 종결된다.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아래 오른쪽)이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의 선거법 개정 무제한 토론 도중 발언 자료를 화면에 띄워줄 것을 문희상 의장에게 요구하며 항의하고 있다.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각 정당의 21대 총선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30년 만에 선거법이 개정된 데다 연동률 50%, 연동률 캡(상한) 30석, 병립형 17석 등 복잡한 비례대표 선출 산식, 만 18세까지 낮아진 선거인 연령, 지역구 획정 미정 등이 얽히고설키면서다. 여기에 위성정당 창당과 군소정당 난립까지 예상돼 변수가 늘었다.

선거법 개정을 극렬히 반대했던 제1야당 자유한국당 움직임이 가장 빠르다. 한국당은 가칭 '비례한국당'이라는 위성정당을 만들기로 했다. 지지층 정당투표가 비례대표 의석수와 준연동되는 만큼 일부 현역의원 당적을 비례정당으로 옮긴다. 황교안 대표가 직접 당적을 옮길 가능성도 있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당연히 고육직책으로 (비례정당을) 만들 것”이라며 “창당 작업 등은 사무총장이 실무를 맡는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새해 1월에는 창당을 완료, 원내 3당인 바른미래당(30석)보다 많은 수의 현역의원을 비례정당으로 옮겨 '기호 3번'을 확보한다는 구체적 로드맵까지 제시했다. 새로운 보수당과 대안정치연대 등이 창당 작업을 완료할 경우 바른미래당 의석수가 절반까지 줄어들 수 있어 한국당으로선 큰 부담도 없다.

지역구 투표는 기호 2번, 정당투표(비례)는 기호 3번으로 몰아달라고 호소한다는 계획이다. 한국당은 사실상 기존 병립형 선거제로 총선을 치르는 효과를 얻는다. 전체 비례의석 47석 중 비례정당으로만 최대 20석 가까이 얻을 수 있다는 게 한국당 계산이다.

[이슈분석]30년 만에 바뀐 선거법...복잡한 셈법 속 총선전략 수정 불가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은 한국당의 비례정당 창당 움직임을 '꼼수 중의 꼼수'라며 비판했다. 이에 한국당은 “작년 지방선거 때 정의당은 '도지사 후보는 민주당을 택하더라도 비례대표 도의원의 당락이 결정되는 정당 투표는 정의당에 해달라'는 내용의 선거홍보물을 배포했다”며 일축했다.

민주당은 한국당의 이러한 전략을 비난하면서도 마땅한 대응책이 없어 고심하고 있다. 바뀐 선거법에선 지역구에서 의석수를 많이 확보할수록 민주당이 가져갈 수 있는 비례대표 의석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한국당처럼 '비례민주당'을 만들어 맞불을 놓자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비례민주당' 창당 신고서가 접수되는 일도 있었다. 민주당은 당과 관련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민주당으로서는 한국당 반발 속에서도 선거제 개혁을 주도한 상황에서 '위성정당' 카드를 꺼내들기 어렵다. 다만 원내 1당 자리가 위협받는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는 관측이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과 당내 의견을 통해 (비례정당의) 파급효과 예상 시뮬레이션을 접했다”면서도 “공식적으로 관련 논의는 없었다. 민생법안 등이 첩첩산중이다. 선거 관련해 치밀하게 분석하거나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상황은 (아직) 아니다”고 말했다.

선거법 개정의 수혜자로 꼽히는 정의당은 '거대 양당' 구도 해체를 노린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반영 정도가 축소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거대 양당으로 수렴되던 제도가 이제 주권자의 뜻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은 것”이라면서 “대결로 얼룩진 양당 기득권 제도에 파열을 내고 원내교섭단체를 만드는 게 정의당의 목표”라고 밝혔다.

선거법 개정으로 인해 군소정당이 난립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현재 중앙선관위에는 등록된 정당만 34개, 창당을 공식 준비하는 예비정당도 16개에 달한다. 선관위가 보유한 자동개표기로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정당이 늘어나면 수개표를 할 수 있다는 예상도 제기된다.

만 18세로 낮아진 선거인 연령도 변수다. 새해 21대 국회 총선거에는 지난 선거에 비해 약 50만명이 더 투표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4월 15일 만 18세가 되는 고3 학생 일부도 투표가 가능하다. 지역구 당선여부가 적게는 수백~수천표 사이로 결정되는 수도권 지역에선 민감한 문제다.

교원단체와 학부모단체 등은 벌써부터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나타낸다. '만 18세 투표권은 세계적 추세'라는 의견과 함께 '고등학교 교실까지 정치판이 될 것'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