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 땅값에 혁신 묻힐라

민간사업자 SPC 출범, 내년으로 미뤄져
정성평가 '막상막하'…토지가격에 좌우
수익성 확보 위해 서비스 질 저하 우려
국토부 "협상 늦춰서라도 꼼꼼하게 점검"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 민간사업자 선정에서 세종과 부산 모두 혁신 요인보다는 '땅값'에 의해 승부가 갈렸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최대 혁신성장 사업인 국가시범도시가 토지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수익사업이나 부실 서비스로 전락할 것을 우려했다. 국토교통부는 협상 기일을 늦춰서라도 꼼꼼하게 사업시행계획을 점검, 우려가 현실화하는 것을 막을 방침이다.

6일 국토부와 업계에 따르면 세종·부산 민간사업자 특수목적법인(SPC) 공식 출범이 내년으로 미뤄진다.

애초 지난 10월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고 올해 안에 민·관 SPC가 출범할 예정이었다. 부산 사업 재입찰에 따른 선정 지연에 이어 최근 토지가격 평가가 좌우한 결과로 말미암아 주관기관과의 협상까지 늦춰졌다. 이달 1일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부산은 물론 이보다 앞서 10월 초에 선정 작업을 마친 세종도 내년 1~2월에나 최종 협상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 관계자는 “올해 안에는 협상 마무리가 어렵다”고 밝혔다.

국가시범도시 민간사업자 심사 결과는 공교롭게 세종과 부산 모두 정성평가에서 나온 근소한 차이가 토지가격(정량평가) 점수에 따라 뒤집혔다. 정성평가 대상(총점 950)은 사업 전략과 서비스 운영, 선도지구 조성 방안 등이다. 토지가격 부문(총점 150)은 민간이 시범도시 부지를 매입해 개발하는 가격을 감정평가 가격보다 얼마나 높게 냈는지로 점수를 매겼다.

세종에서는 정성평가에서 현대자동차·KT 연합군이 906.35점을 받아 898.65점을 받은 LG CNS 컨소시엄을 앞섰다. 토지가격에서는 LG CNS 컨소시엄이 100.00점, 현대차·KT가 78.22점을 받았다. 토지가격 점수 차이(21.78)가 정성평가 격차(7.70)를 크게 웃돌면서 총점 순위를 갈랐다. 우수성과 혁신성 평가보다 토지가격이 당락을 좌우한 셈이다.

부산도 마찬가지다. 정성평가에서 한국수력원자력·LG CNS가 참여한 컨소시엄과 한화에너지가 대표한 컨소시엄은 각각 911.62점, 893.40점으로 약 18.2점 차가 났다. 그러나 토지가격에서 20점 넘게 차이가 벌어져 전체 1100점에서 3점도 안 되는 차이로 한화에너지의 '더 그랜드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두 사업 모두에 핵심 기관으로 참여한 LG로서는 세종에서는 '투자금'으로 승기를 거머쥔 반면에 부산에서는 같은 요인으로 패한 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국가시범도시 사업에 민간 혁신 역량을 반영하려 도입한 SPC 평가가 '땅값'에 좌우된 것이다. 기술성에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고 볼 수 있지만 문제는 땅값이 향후 사업에 미치는 영향이다. 땅에 많은 투자금을 쏟아 부은 민간 사업자가 수익성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관건이다.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서비스와 시스템 질을 낮추거나 향후 입주 시민에게 부담을 지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해 LH와 한국수자원공사가 SPC 주주로 참여하는 장치는 뒀지만 민간이 주도하는 만큼 수익성이 없으면 운영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짙다. SPC 의무 운영기간은 15년이다.

국토부는 토지가격이 전체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설계했지만 결과적으로 정성평가 차이가 적었다고 설명했다.

정량평가 평가 150점에서 토지가격평가는 100점을 배정했는데 그나마도 60점은 기본점수로 주면서 점수차를 최소화했다. 하지만 결국 토지 가격에 의해 결정됐다. 정성적인 측면에서 컨소시엄 간 차이가 여러 분야에서 엎치락뒤치락할 만큼 치열했다는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본 협상 과정에서 사업계획을 좀 더 꼼꼼하게 따져서 최종 사업시행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국토부는 “(사업 부실)우려가 절대로 현실화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공개입찰에서 우선협상대상자가 공정한 심사에 의해 결정될 경우 협상과정이나 사업시행합의서 체결과정은 요식행위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국가시범도시 사업에서는 사업계획을 구체적으로 논의한다.

이 때문에 애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후 60일 이내에 체결 예정이던 본 계약과 SPC 출범은 수개월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국토부는 필요에 따라 조건부 계약 체결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국가시범도시는 수조원대의 대형 사업인 데다 백지에서 혁신적인 서비스를 구현하는 첫 사업인 만큼 관심이 크다”면서 “땅값에 혁신성이 묻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