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11>국립공업연구소 개편...경제기획원-상공부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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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이 1965년 4월 19일 국립공업연구소를 방문, 현장시찰을 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박정희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이 1965년 4월 19일 국립공업연구소를 방문, 현장시찰을 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이런 상태로 어떻게 과학기술 진흥을 기대할 수 있겠나.” 전국 과학기술 연구기관 실태 조사 결과를 본 전상근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장(현 삼전복지재단 이사장)은 암담한 연구계 현실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연구기관은 하나같이 예산과 연구인력이 턱없이 부족했고, 연구 환경은 열악했다. 이 상태라면 과학기술 진흥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은 과학기술 진흥을 위해 1963년 전국 과학기술 관계 연구기관 실태를 정밀 조사했다. 이 작업은 이응선 기술조사과장 주도로 진행됐다. 조사 대상은 전국 국공립 연구기관과 대학·민간 연구기관 등이었다. 연구시설, 연구인력, 운영 실태까지 조사한 이 자료는 한국 연구개발 정책 수립에 귀중한 기초자료가 됐다. 그러나 당시 연구소 살림살이는 빈곤 그 자체였다. 전상근 삼전복지재단 이사장의 회고. “당시 한국에는 모두 72개 연구기관이 있었어요. 연구인력은 1750명이고, 연간 전체 연구기관 총예산은 12억원에 불과했습니다.”

연구기관 가운데 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를 제외하면 국공립 연구기관은 소속 부처의 각종 정책을 지원하는 보조 역할에 그쳤다. 부처 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거나 이를 위한 조사·분석 업무에 매달렸다.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연구 활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부 재정회계법과 공무원 정원제에 묶여 인력 및 연구비 부족으로 첨단 연구시설 도입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렇다 보니 국공립연구소는 '공무원 유배지'라는 자조 어린 푸념까지 나돌았다. 각 대학 부설 연구기관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름만 연구기관이지 연구비나 연구인력이 모자라 기초연구 착수조차 진행하지 못했다. 민간 연구기관은 간판만 달아 놓았다.

그러나 유일하게 금속연료 종합연구소는 예외였다. 최형섭 박사가 1961년에 설립한 이 연구소는 대한중석, 한국광업제련공사 등 국영 기업이 연구비를 공동 출연해 운영했다. 산·학·연 공동연구의 길을 연 민간 연구기관으로의 위상을 자랑했다. 전상근 당시 국장의 말. “이 조사 결과를 본 후 중요한 결정을 했습니다. 연구소를 이대로 둘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종합과학기술연구소 설립을 추진했습니다.”

기술관리국은 그 방안으로 국립공업연구소(현 국가기술표준원)를 확대 개편해서 과학기술 진흥과 산업기술을 연구하는 중추 기관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개편안에 연구소 운영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당시로선 파격 내용을 넣었다. 주요 내용은 △연구소 형태는 국가기관(국립)이 아니라 민간 형태인 재단법인체로 개편해 운영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한다. △종합과학기술연구소는 상공부 산하기관에서 과학기술 행정의 주무 부처인 경제기획원 소속으로 이관해 명실공히 국가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중심으로 육성한다는 것이었다.

전상근 기술관리국장은 개편 방안을 마련해 경제기획원 장관과 차관에게 보고, 승인받았다. 이어 상공부와의 협의에 나섰다. 전상근 국장은 브리핑차트를 만들어 상공부 장관과 차관을 만나 연구소 개편의 불가피성을 보고했다. 국립공업연구소 관계자들과도 만나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러나 전상근 국장의 노력과 계획은 상공부와 국립공업연구소의 거센 반대에 부닥쳤다. 반대 이유는 '구한말에 발족한 오랜 역사의 국립연구소를 재단법인으로 바꾼다는 것에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립공업연구소는 1883년 화폐 주조와 금속 광물 분석·가공·제련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분석시험소로 출발했다.

그러나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당시 연구소 연구 인력과 행정직은 모두 공무원 신분이었다. 민간으로 신분이 바뀌는 것에 이들은 반대했다. 당시만 해도 사농공상(士農工商) 심리가 강하던 시절이었다. 상공부 전 고위관리 A씨의 말. “장·차관이 부처 조직을 지키지 못하면 리더십을 상실해 영(令)이 서지 않아요. 해당 관료는 대응 논리를 개발해서 조직 지키기에 적극 나섭니다. 어느 부처나 같습니다.”

상공부는 1963년 7월 (가칭)한국과학기술연구소법(안)을 마련해 경제각료회의(현 경제장관회의)에 제출했다. 이 법안에서 상공부가 연구소를 지휘·감독하며, 대신 연구소 의결기구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상공부는 국립공업연구소를 산하에 계속 두고자 했다. 주요 내용은 △국립공업연구소를 과학기술 종합연구와 시험기관으로 육성하기 위해 특수법인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로 확대 개편하고, 자본금은 정부가 전액 출자한다. △상공부 장관이 연구소를 감독하며,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연구소에 이사장과 부이사장 각 1명, 7명 이내의 이사, 감사 1명을 둔다. 위원장직은 경제기획원장이 맡고 재무부 장관, 상공부 장관, 이사장과 과학기술계 대표 4명으로 연구소 의결기구인 운영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이 안은 그해 7월 8일 국립공업연구소 기구강화추진위원회 논의를 거쳤다. 위원회는 상공부 차관보가 위원장이고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장, 상공부 공업국장, 국립공업연구소장, 원자력연구소장 등 10명의 위원으로 구성했다. 상공부는 산하 기관인 국립공업연구소를 경제기획원에 넘기고 싶지 않았다. 경제기획원과 상공부 간 대립으로 경제기획원이 야심 차게 추진하던 연구소 개편은 동력을 잃고 표류했다. 전상근 당시 국장의 말. “상공부는 연구소를 경제기획원에 이관하고 싶은 생각이 아예 없었어요. 결국 연구소 개편 구상은 쓴잔을 들이킨 셈이지요.” 대통령 자문기구인 경제과학심의회의(이하 경과심)도 이듬해 국공립연구기관 실태를 조사해 그 결과를 보고받고 해법을 논의했다.

1964년 9월 9일. 경과심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주요한 위원, 신현확 위원, 최규남 위원, 이종진 위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정부에 건의서를 제출했다. 이날 회의에는 의장인 박정희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고 주요한 위원이 부의장 역할을 했다. 경과심은 그해 4월 15일부터 6월 15일까지 2개월 동안 14개 국립연구소 현황과 실태 파악을 위해 현지 실사를 진행했다. 실사 대상은 원자력연구소, 국립건설연구소, 중앙전매기술연구소, 국립생사검사소, 국립동물검역소, 국립수산진흥원, 중앙수산검사소, 농촌진흥청, 국립지질연구소, 국립공업연구소, 국립보건원, 철도기술연구소, 중앙전기통신시험소, 육군기술연구소 등이었다.

실태 조사 결과는 경제기획원 조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든 국립연구소가 우수한 연구 인력과 예산 부족, 연구기자재와 소모품 구매난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국립연구소는 부처별로 소속이 달라 연구개발 과제가 중복돼도 이를 통제·조정할 기관이 없었다. 전체 연구소의 사무직과 연구직 비율이 4대6으로 외국의 2대8에 비해 사무직 비율이 높았다. 연구진 직급도 하위직인 데다 보수가 낮아 유능한 기술 인력 확보가 어려웠다. 1964년의 경우 58개 국공립 연구기관에 배정한 금액은 9억3000만원으로 영세성을 벗지 못했다.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연구시설 확충이나 첨단 기자재 도입, 시약품 구입 등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경과심은 연구소가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연구 실적이 우수한 연구자는 인사 승진과 처우를 우대하고 포상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연구자에 대한 행정 제약을 지향한다. △연구예산을 융통성 있게 집행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등 3개 사항을 정부에 촉구했다.

경과심은 과학기술 진흥의 비약적인 발전을 위한 7개 사항을 제시하고 정부가 대책을 강구할 것을 당부했다. 첫째 연구기관을 통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원자력연구소·국립공업연구소·금속연료종합연구소를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조속히 통합해 운영하고, 가능하면 특수법인체로 하는 게 좋다. 둘째 종합적인 과학기술행정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현재 과학기술 행정 전담 기구로 경제기획원에 기술관리국이 있지만 과학기술 발전의 종합적인 정책 수립과 행정 체제 확립, 연구 예산의 효율적인 집행을 위해서는 과학기술원과 같은 행정기구를 신설해야 한다.

셋째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역량 제고를 위해 각계 권위자로 과학기술연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넷째 연구원의 적재적소 임용을 위해 연구공무원법을 제정해야 한다. 연구공무원은 별정직으로 하며, 오직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게 실적 위주로 승진과 처우·포상 등을 해야 한다. 다섯째 예산회계법으로 인해 연구에 차질이 없도록 연구 특수성을 인정해서 연구비 지출과 포상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회계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여섯째 연구소에 고가의 연구 실험 시설을 도입해 놓고 활용하지 않는 시설을 일정 장소에 통합 설치해서 이를 공동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일반 기업체와 상공인도 이용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일곱째 과학기술 진흥의 범국가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기초연구·응용연구·공업화연구를 가리지 않고 연구비, 연구시설, 연구기자재 등에 대해 세제 특혜 조치를 고려해야 한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