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기술탈취 근절, 첫발을 떼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를 근절하기 위한 상생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환영한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부터 무려 4년여 만의 성과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의 출발은 납품 단가 현실화와 기술 탈취 근절이기 때문에 법안 통과의 의미가 남다르다.

기술 탈취는 중소기업의 기술 자산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는 물론 생산 및 매출 감소, 나아가 고용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시작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개발한 기술을 언제든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은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 의지 자체를 저해한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중소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귀결된다. 국가 전체 사업체의 99%, 종사자의 83%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경쟁력 약화는 결국 대한민국 경제의 저성장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기술 탈취가 단순 개별 기업들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문제인 이유이다.

그동안 정부는 중소기업 기술 보호를 위해 여러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했다. 기술 탈취 문제 해결을 위한 법률도 하도급법, 상생법, 특허법, 중소기업기술보호법, 부정경쟁방지법 등 10여 개에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과 법률이 기술 탈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기능을 하지 못했다. 매년 국회 국정감사 현장에는 기술 탈취 피해 중소기업들의 호소가 이어졌다. 단편적인 법·제도 개선의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다행히도 지난 7월 23일 기술 탈취 근절을 위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미 해외 주요국에서 중소기업의 권리 보호를 위해 도입했고, 자연스러운 문화로까지 정착된 비밀유지계약(NDA) 체결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3배 이내의 징벌적 손해배상도 도입했다. 법원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위반 행위의 증명과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자료의 제출을 명할 수 있도록 하는 자료제출명령 규정도 마련했다.

무엇보다 이번 상생법 개정의 핵심은 입증 책임의 완화·분담이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수탁기업이 먼저 기술 탈취를 당했다는 구체적 행위 양태를 제시하면 위탁기업 역시 그에 상응하는 구체적 행위 양태를 제시할 것을 명시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과도한 규제며, 소송법의 일반원칙을 위배하는 과잉 입법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소송법의 일반원칙에도 특허법 등 이미 다수의 법률에 입증 책임의 전환 또는 완화 규정이 도입돼 있다. 우려할 사안이 아니라 기술 탈취 예방과 신속한 권리 구제를 위해 필요한 조처이다.

이제 첫발을 뗐다. 법의 실효성을 높이고, 더욱 두텁게 중소기업의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몇 가지 보완 과제가 있다.

우선 위·수탁 과정에서 계약 체결 이전에 발생하는 기술 탈취 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법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 현장에서는 사업 제안이나 교섭과 같은 계약 체결 이전에 기술자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심지어 기술자료를 제공하고 교섭단계를 거쳤으나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조금 더 나아가 복잡한 기술 유용 사건에서 법원의 오판에 대한 견제 장치 마련도 고민해야 한다. 법률전문가인 법원이 모든 분야의 전문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갈수록 첨단화되는 기술 분쟁 사건에 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전문가로 이뤄진 합의체에서 기술 유용 행위에 대한 사실관계를 종합해서 분석하는 이른바 국민참여제도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빠르게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의 파고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혁신 기술이 기업 및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자산이다. 기술 탈취 근절을 위한 상생법 개정안 통과는 중소기업계가 매우 기뻐할 일이다. 이를 통해 국내 중소기업이 기술 탈취라는 분명한 불공정 행위 앞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는 현실이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상생법 개정이 끝이 아니다. 기술 탈취 근절을 위한 법·제도가 현장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계속 보완해 나가야 한다.

[ET단상]기술탈취 근절, 첫발을 떼다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2020kkma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