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17>미 바텔조사단, 과학기술연구소 설립 조사보고서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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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바텔조사단이 1965년 12월 15일 韓·美 정부에 제출한 과학기술연구소 설립 및 조직에 관한 조사보고서.
 <전상근 당시 경제기획원 국장 제공>
<美 바텔조사단이 1965년 12월 15일 韓·美 정부에 제출한 과학기술연구소 설립 및 조직에 관한 조사보고서. <전상근 당시 경제기획원 국장 제공>>

따가운 가을 햇살에 오곡이 영글어 가는 1965년 9월 23일. 이날 오후 1시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설립 계획을 한국 정부와 공동으로 수립하기 위해 미국 바텔기념연구소 조사단 5명이 미국 노스웨스트 항공 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조사단은 단장인 에드워드 슬로터 바텔기념연구소 부소장을 비롯해 존 그레이 바텔개발회사 부사장 겸 바텔 일반상담역, 윌리엄 해리스 2세 바텔 콜럼버스 연구소 보좌관 겸 워싱턴사무소장, 드웨인 그리커 바텔 시애틀 사무소 공업경영 고문, 도널드 에번스 바텔 콜럼버스 연구소 기술 고문 등이었다.

바텔기념연구소(Battelle Memorial Institute)는 1929년 고든 바텔이라는 미국의 한 철강 사업자의 유지에 따라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세운 연구소다. 조사단의 내한은 그해 7월에 내한한 미국 대통령 과학고문 도널드 호닉 박사 등 과학사절단이 귀국해 8월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건의한 후속 조치에 따른 것이다. 호닉 박사는 존슨 대통령에게 미국 대외 원조 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가 지정한 미국 공업연구기관과 조속히 용역계약을 체결해서 한·미 공동사업 기간 및 범위를 제시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 건의에 따라 미국은 그해 9월 1일 바텔기념연구소와 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조사단을 한국에 보냈다.

과학기술연구소 설립 한국 측 준비 책임자이던 전상근 당시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장(현 삼전복지재단 이사장)은 미국 조사단의 내한을 앞두고 사전 준비를 철저히 했다. 우선 연구소의 법적 성격을 명확히 했다. 정부는 연구소를 비영리기관으로 설립한다는 원칙은 정했지만 설립법에 따른 특수법인체로 할 것인지 민법에 의한 재단법인체로 할 것인지를 정하지 않았다.

전상근 당시 국장의 당시 회고. “이 문제를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신현확 당시 경제과학심의위원(전 국무총리)을 찾아갔습니다. 신 위원은 내가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상공부에 잠시 근무할 때 공업국장이었습니다.” 신현확 위원은 전상근 국장을 반갑게 맞이했다. “무슨 일인가?” “네, 이번에 설립할 과학기술연구소의 법적 성격에 관한 일입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위원님의 의견을 듣고자 왔습니다.”

전상근 국장으로부터 그동안의 설립 과정을 들은 신현확 위원은 사견(私見)을 전제로 말했다. “전 국장 의견대로 연구기관이 자율성과 독립성을 고집하면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설립법에 따른 특수법인체로 하되 연구개발공사와 같은 형태로 하는 것도 검토해 볼 일이라고 생각해요.”

전상근 국장은 이어 고석윤 변호사를 만났다. 고석윤 변호사는 현재 기후변화센터 명예이사장으로 있는 고건 전 국무총리의 친형으로, 사법고시와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상공부에서 전상근 국장과 함께 근무하고 상공부 공업국장을 지낸 후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전상근 국장은 고석윤 변호사에게 연구소 설립 배경과 국내 연구기관 현황 및 문제점을 설명한 뒤 설립 법에 따르는 특수법인체와 연구개발공사 같은 형태의 두 가지 정관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고석윤 변호사는 3주 후 두 가지 정관안을 만들어서 전상근 국장에게 줬다.

경제기획원은 9월 29일 회의실에서 과학기술연구소 설립준비위원회를 개최했다. 그 자리에는 미국 바텔 조사단의 슬로터 단장도 참석했다. 회의는 설립할 연구소의 법적 성격을 어떻게 하느냐를 놓고 위원들끼리 의견을 교환했다. 전상근 국장은 고석윤 변호사가 작성한 두 가지 안을 참석자들에게 나눠 주고 검토 결과를 설명했다.

첫날 회의에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두 번 더 회의를 열어서 민법에 의거한 재단법인 형태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위원회는 고석윤 변호사가 기초한 정관 일부를 수정해서 최종 정관으로 확정했다. 위원회는 또 설립할 과학기술연구소의 자율 운영과 관련해 정부가 보장하는 연구소육성법의 제정을 정부에 건의했다. 이런 인연으로 고석윤 변호사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 고문 변호사로 오랫동안 일했다.

바텔 조사단은 1개월 남짓 한국에 머물면서 연구소 설립의 타당성 조사를 진행했다. 전상근 국장은 조사단에 한국이 원하는 기술연구소 성격을 알리고, 이를 그들의 조사보고서에 최대한 반영토록 노력했다. 한·미 두 나라 실무진은 과학자들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연구소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이사회를 구성하고, 정부 측 인사는 최소화하기로 했다.

연구소장은 이사회에서 선임하고 소장은 연구 과제의 선정과 수행, 인사와 예산 집행 등 운영에서 최대한 자율성을 갖도록 했다. 이런 형태의 연구소 운영에 대해 일부 반대도 있었지만 미국 측의 강력한 요구와 한국 측 준비위원회의 일치된 주장에 따라 정부도 이를 수락했다.

전상근 당시 국장의 회고. “혹시 있을지 모를 소장의 독주를 막는 제동 장치도 마련했습니다. 소장을 감독하고 운영에 엄격한 평가를 할 권한을 이사회가 갖도록 했습니다.” 바텔 조사단은 연구소 운영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한국 측에 연구용역 계약제 도입을 제안했다. 미국에서 바텔기념연구소가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생소한 제도였다. 한국 측은 처음에는 제도 도입에 부정적이었다. 한 번도 적용해 보지 않은 제도였고, 기업이 원하는 기술 개발을 연구소가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기업이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연구소에 기술 개발을 의뢰할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정부는 고심 끝에 기술연구소에 새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연구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국·공립연구소가 이 제도에 자극받아 안일한 연구 타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바텔 조사단은 연구 제도와 관련해 한국 측에 많은 조언을 했고, 한국 측은 이 제도 도입에 적극 나섰다. 이런 가운데 한·미 간에 연구소 규모를 놓고 이견(異見)이 발생했다. 당시 바텔 조사단은 미국 측 뜻에 따라 500만달러 원조로 200명 안팎의 인력을 둔 연구소를 구상했다. 이는 한국 측 기대에 크게 모자라는 규모였다. 한국 측은 1000명 규모의 연구소를 계획했다.

연구소 설립은 한·미 두 정상이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내용이었다. 특히 한국군의 월남전 참여를 바라는 존슨 대통령의 의도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200명 규모라니,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 측은 이 문제를 정식으로 미국 측에 제기했다.

그해 11월 말 어느 날 전상근 국장은 재한국 유솜(USOM) 건물 회의실에서 바텔 조사단과 마주 앉았다. 전상근 당시 국장이 회고록(한국의 과학기술 개발)에서 밝힌 그날 대화의 내용. 슬로터 조사단 단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우리 조사단은 새로 설립할 연구소 규모는 200명 수준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측 의견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 입장은 연구소 규모는 1000명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설이나 장비도 이에 맞게 설치해야 합니다. 바텔 측은 연구소 건설비로 500만달러 정도를 계획하고 있지만 우리는 2000만달러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국장, 우리 조사단은 계약 당사자인 USAID로부터 500만달러 규모 시설을 갖춘 연구소 설립 계획을 의뢰 받았습니다.”

전 국장은 단호하게 한국 측 입장을 밝혔다. “이 사업은 한·미 두 나라 대통령이 공동성명에서 발표한 일입니다. 따라서 이 일은 두 나라 합의로 추진해야 합니다. 한국 입장은 2000만달러 상당의 시설을 갖춘 연구소 설립에 변함이 없습니다. 바텔 측은 한국 측 의사를 존중해서 계획을 수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슬로터 단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일은 제 권한 밖의 일입니다.” “알겠습니다. 바텔 조사단이 미국의 용역 계약자에 지나지 않아 그런 권한이 없다니 우리가 미국 정부와 직접 이 문제에 대해 다시 논의하겠습니다.” 그날 대화는 상대 입장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끝났다.

며칠 후. 언스트 USAID 부처장이 경제기획원으로 전상근 국장을 찾아왔다. “연구소 규모 문제로 바텔 측과 이견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연구소 설립은 한·미 두 나라 대통령이 공동성명을 통해 약속한 일입니다. 바텔 측은 이미 규모가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 측의 책임 있는 인사와 다시 거론하기로 한 것입니다.” “잘 알았습니다. 한국 정부의 입장을 미국 정부에 전달하겠습니다.”

이후 두 나라는 입장을 조율해 연구소 규모는 한국 측 주장대로 인원 1000명을 기준으로 설립하고 900만달러를 건설비로 미국이 지원하는 것으로 타결했다. 바텔 조사단은 국내에 머무르면서 제조업체와 대학, 연구기관, 교육기관, 협회 등을 방문해 한국 과학기술연구 실태를 조사했다. 바텔 조사단은 이를 바탕으로 그해 12월 15일 한·미 두 나라 정부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설립 및 조직에 관한 조사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에는 연구소 설립의 타당성, 법인 조직, 연구소 운영 범위와 조직, 자매 연구소 사업계획, 사업계획 일람표와 함께 부록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정관(안) 및 연구소 육성법(안) 등 설립에 따른 모든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았다. 바텔 조사단은 80여쪽의 조사보고서에서 법인체 조직에 대해 '연구소 조직은 특별법으로 뒷받침할 법인체로 설립해 연구소 정책 수립과 중요 직원의 임면을 자율로 수행하는 비영리기관으로 설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 과학기술 발전의 초석(礎石)을 놓은 담대한 설계도였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