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백반집의 사과문

“내 월급만 빼고 다 오른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 자연스럽게 나오는 푸념이다. 작년부터 식품·외식 가격 인상 소식이 유독 잦은 것처럼 느껴진다. 커피 한 잔부터 외식비나 맥주 한 캔 가격까지 올라서다.

즐겨 찾는 백반집이 있다. 고등어 한 마리에 반찬 다섯 종류, 국, 밥 등이 한 상 가득 나온다. 공깃밥 추가는 항상 덤이다. 백반 한 상 가격은 4500원이다. 4년 전 이 가게가 백반 가격을 4000원에서 500원 올렸다. 당시 주인은 두 달 전부터 가격 인상 공지문을 가게 벽에 크게 내걸었는데 '정말 안 오른 게 없어 가격을 올리게 돼 죄송하고 죄송하다'는 문구가 유독 인상에 남았다. 절절한 미안함이 느껴졌다.

부부가 일하는 이 가게는 2대째 운영 중이다. 가게 주인의 공지는 30년 넘도록 가게를 찾아 준 손님들을 위한 사과였다. 최근 이 가게에 들렀을 때 폐업할 수도 있다는 얘길 들었다. 인건비가 오르면서 직원도 없이 이들 부부가 운영해 왔지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아내는 직장을 구했고 남편 혼자 장사를 더 이어 가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주인에게 백반 가격을 올려보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물어봤지만 한숨만 내쉬었다.

자영업자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가격 책정이다. 가격을 올리자니 매출이 떨어질까 우려되고 가격을 유지하자니 이익이 남지 않는다. 백반집 주인의 한숨도 이런 고민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가격 인상 소식은 매번 이슈여서 시기나 방식을 오랜 기간 고민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인건비, 임대료, 원재료, 물류비가 오르면서 원가 부담이 커졌다. 그럼에도 마진을 남길 수 있다면 굳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도록 인상을 감행하진 않을 것이다. 매출이 발생하는 가격 구간이 적정한 시장 균형으로 볼 수 있어서다.

10여년 전 가격이 비싸다며 시장에서 비판받으며 판매 중지 결정을 내린 제품이 있다. 농심이 만든 '신라면 블랙'은 2011년 출시 당시 1600원이라는 고가로 출시됐다. '사실상 가격 인상'이라는 비판에 결국 국내 판매를 중단했다. 그런데 이후 신라면 블랙은 해외 판매량이 급증해 '세계 최고 라면'에 선정됐다. 국내에서도 화제를 모으며 1년 만에 재출시됐다.
가격 결정권은 결국 공급자에게 있다. 일부 재화를 제외하고 이를 받아들일지 선택은 소비자 몫이며, 시장에 맡겨진다. 가격 인상을 대하는 공급자 태도가 중요하다. 기습적으로 가격을 올린다거나 중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꼼수를 부리는 방법은 더 통하지 않는다. 식품·외식업체가 가격 인상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이를 '가격 조정안'으로 표현하는 일이 잦다. 상식적인 업체는 일부 제품은 인하하고 일부는 올리는 모양새를 취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인상 내용만을 담으며 굳이 '조정'이란 표현을 쓴다. 요즘 백반집 공지문이 자주 떠오른다.

[ET톡]백반집의 사과문

박효주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