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우주R&D '블랙아웃'

2만년 만에 찾아온 기회가 사라졌다. 우리나라 과학계가 사상 처음으로 추진한 소행성 탐사 사업이 무위에 그치면서다. '아포피스 탐사 사업'이 지난 4월 21일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대상 선정 과정에서 탈락했다. 우리나라가 독자 기술로 개발한 탐사선을 통해 소행성 아포피스를 연구하는 이 프로젝트는 심우주 탐사 신호탄으로써 우주 강국을 위한 도약 사업으로 주목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탐사 대상인 아포피스처럼 지구에 근접해서 지나가는 대규모 소행성은 약 2만 년에 한 번꼴로 찾아오는 절호의 기회로서 기대감을 모았다. 그러나 정부는 국가 우주 계획을 근거로 오는 2035년으로 계획된 소행성 탐사를 앞당길 근거가 부족하다며 프로젝트를 외면했다.

여기에 최근 예타 대상 선정 기회가 한 차례 더 열렸지만 신청 후보 사업에서 이번 프로젝트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과학계는 올해 4월 예타 대상에서 탈락할 당시 정부 결정이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ET톡]우주R&D '블랙아웃'

아포피스 탐사선은 실제 우주 이동 시간을 고려했을 때 2027년에 발사돼야 한다. 여기에 탐사선 제작 기간을 고려하면 개발 착수 시기는 늦어도 내년이 돼야 한다. 예타 기간 6개월을 포함하더라도 이번 예타 대상 신청 포기는 아포피스 탐사 포기 선언과 다름없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 아포피스 탐사 프로젝트가 물거품이 되던 시점에 미국은 자국 탐사선을 이용한 탐사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과학계는 이번 사태를 두고 우주 연구개발(R&D) '블랙아웃'을 우려하고 있다. 기술적 후퇴를 떠나 관습적 후퇴가 깊숙이 자리 잡았다는 이유에서다. 사업 실패의 가능성을 먼저 고려하고, 탁상행정 표본인 R&D 추진 중장기계획에만 집착하면서 예정되지 않은 도전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학을 향한 정부의 경직성. 우리나라 과학계가 오랜 기간 타파를 외쳐 온 관습이다. 역대 정부가 과학이라는 키워드 앞에서 매번 유연성 확보를 강조해 왔지만 도전이 외면받는 결과는 변함이 없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 이후 수많은 기대 속에서 순항하고 있다. 아포피스 프로젝트는 사실상 수포가 되었지만 정부는 올해 하반기 소행성 탐사 관련 중장기계획 수립을 다시 예고하고 있다. 이번만큼은 투자성 중심 R&D 계획이 아니라 미래 진흥을 위해 도전적 목표를 세울 객관적인 판단이 앞서길 바란다.

대전=이인희기자 leei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