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산업은 산업이다

[데스크라인]산업은 산업이다

1개월 전 MWC23 바르셀로나 출장길. TV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주년 특집 방송이 연일 보도됐다. 전쟁의 참상, 인간에 대한 폭력, 가족을 잃은 슬픔이 화면 가득 묻어났다. 든든한 국방과 안보의 중요성이 새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최고 가치다. 국가 존재의 이유다.

전쟁 억지력. 현 정부의 외교 정책 근간이다. 굳건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해서 한반도 평화를 지킨다는 구상이다. 반격이 두려워서 선제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정부의 햇볕론은 찾아볼 수 없다. 북한의 로켓 발사에 위협을 느낀 일본도 변화를 택했다. 한·미·일 동맹 수준은 역대급이다.

미·중 관계는 악화일로다. 미국은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출구 없이 코너로 밀어붙인다. 과거 신냉전 체제, 사이버 전쟁에 이어 '반도체 전쟁'에 불이 붙었다. 미국은 물리적 충돌 없이 중국을 꺾을 수 있는 무기로 반도체를 지목했다. 방법론으로는 당근과 채찍이다. 미국 투자기업에는 보조금과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그것이다. 반대로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유입은 막았다. ASML 등 네덜란드 기업이 동참했다. 첨단 미세공정 기술의 중국 유입도 차단했다. 미국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지원법 가드레일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우리 기업이 직격탄을 맞을 공산이 커졌다. 첨단 공정의 신·증설이 막히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중국 공장은 범용(레거시) 팹으로 전락할 수 있다. 벌써 '탈 중국'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보다 앞서 미국은 통신 분야에서 화웨이 장비 사용 가이드라인도 제시했다. 틱톡 등 중국 앱의 퇴출 움직임도 가시화하고 있다. 역대 최고 수준의 대중국 산업 규제정책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자신감은 국내에서도 좀 지나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미국 정부가 수율 등 반도체 관련 영업 기밀까지 요구하면서 국내 기업들은 처지가 난감해졌다. 정보기술(IT) 분야도 마찬가지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클라우드서비스보안인증제(CSAP) 문제와 관련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공문을 보냈다. 요지는 국내 공공 클라우드 시장의 사실상 완전 개방 요구다. 한국 정부의 정책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다고 접근했다.

물론 우리 정부는 한·미 관계를 고려한 정무적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통상자원부, 과기정통부 등 관련 부처는 용산 분위기도 읽어야 한다. 이러다 보니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법정 다툼을 벌이는 통신망 이용 대가, 인앱결제 이슈 관련 적극 행정은 희망 사항이다. 일명 구글세로 불린 디지털세 도입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잊혀 간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매출 있는 곳에는 세금이 있어야 한다.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의 역할이 필요한 사항들이다.

지금은 입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상임위원장들에 대한 기대치는 높아지고 있다. 야당은 최소한 야당다워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 한·미 동맹에 영향을 미치는 산업 정책에 적극 나서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해당 상임위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은 존중하되 산업적 실리는 포기하면 안 된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일 경우 아시아적 가치, 한국적 가치는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정치와 경제 분리, 외교와 산업 간 거리두기를 통해 우리 기업이 자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내 중소벤처 최고경영자(CEO)들에게는 이것이 민생 현안이다.

김원석 통신미디어부 부국장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