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74〉어느 기업의 맥락 있는 선택

컨텍스트(Context). 원래는 텍스트의 구조나 텍스트가 구성되는 방식을 의미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뭔가와 관련된 '설정'이나 '배경'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런 탓인지 맥락이나 문맥으로도 번역된다. '줄기 맥(脈)' 자가 쓰인 걸 보면 엉뚱한 줄기를 잡고 잎사귀를 훑어야 소득없다는 얘기를 하려 했던 듯도 싶다.

혁신의 특징에 뭐가 있을까. 누구든 뭔가를 떠올리겠지만 공통된 것 중 하나는 다양성이란 것이겠다. 개중엔 독창적이어서 한참을 보고서도 그 속에 담은 원리를 깨닫기 쉽지 않다. 실상 도요타 생산방식이란 걸 많은 기업이 견학 후에 해보았지만 별반 자기 것으로 만든 곳은 적다. 누군가는 도요타에겐 임시방편을 해법으로 들고 갔으니 그럴 만도 하다고 했다. 물론 그 반대도 있겠다. 베껴하기 난해한 독창 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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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카와제작소(Maekawa Seisakusho)는 1924년 도쿄에서 설립됐다. 설립자 기사쿠 마에카와(Kisaku Maekawa)는 와세다대 이공학부를 졸업했다. 당시 실업계로선 드문 엘리트 엔지니어였던 셈이다. 거기다 진즉부터 사회사업에 관심을 뒀다. 그가 만든 와케이주쿠(Wakeijuku)라 불린 기숙사는 4 명 총리를 배출했으니 그를 그만그만한 사업가라 치부할 일은 아니지 싶다.

마에카와제작소는 산업용 냉동고를 제조했는 데, '마이콤(MYCOM)'이란 브랜드는 업계에서 명성을 얻고 있었다. 1998년 즈음에는 일본에서 수출되는 산업용 냉동고의 90%가 마에카와 것이었고, 이 브랜드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50%에 이르렀다. 그러니 이 기업을 그렇고 그런 사업체로 생각하는 것도 오산이다.

그런데 이곳엔 한 가지 유별난 운영방식이 있었다. 독립기업이라 불리는 작은 소기업들로 구성돼 있었다. 각 기업엔 고작 평균 25명 내외 직원이 있고, 생산, 기술, 시장 특성에 따라 사업이 구분돼 모기업이란 게 없으니 자립 운영이 기본이었다. 이러니 총 직원 수는 2500명 정도에 법인은 일본에 80개, 해외에 23개가 설립돼 있었다. 물론 58개는 지역별 고객서비스 영업을, 특정 고객 범주로 나눠진 20개가 포함된 숫자지만 경영상식에선 한참 벗어난 듯 보였다. 아무리 독립기업들이 마에카와의 일원이란 의식을 갖고 있다지만 구멍가게도 아닌데 말이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작동했던 것일까. 우선 직원은 여러 가지 기능을 다룰 수 있는 게 우선이었다. 제조, 판매, 서비스, 심지어 디자인과 회계까지 포함해 말이다. 즉, 마에카와에서 직원이란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되 뭔가는 자신의 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제너럴리스트란 자의식도 갖고 있었다. 지역별로 구분된 작은 독립기업들은 거의 자율적으로 운영됐고 고객을 경험하고 공동으로 문제 해결 하는 데 수월한 도구가 됐다. 고객과 일체성을 만드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고객의 공간에 거주하는 것이라는 취지도 있었다. 거기다 이런 작은 조직과 다중 역할은 암묵적 지식을 공유하고 맥락과 배경 하에 유연하게 적용하는데 더 적합했다.

그렇게 마에카와의 직원들은 총체성 속에 자신의 역할이란 걸 찾고, 이건 이곳의 문화이자 이 나누어진 조직의 작동원리가 됐다.

컨텍스트의 유사한 단어에 밀유(milieu)라는 것이 있다. 환경이나 어떤 특정한 장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마당 장(場)' 자와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아무리 서양에서 가져오되 결국 자기 것을 만든다는 문화적 배경 속에서 이 기업은 자신의 맥락에서 해법을 심화시킨 셈이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