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107〉제2차 과학기술 장기계획 기본방침 수립

전두환 대통령이 1985년 12월 19일 기술진흥확대회의에서 우수기술 유공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전두환 대통령이 1985년 12월 19일 기술진흥확대회의에서 우수기술 유공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바쁘다 바빠.” 1985년 5월. 과학기술처는 과학기술 미래 청사진인 제2차 과학기술 장기 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이 계획은 과학기술처 출범과 함께 수립한 1차 과학기술 장기 종합계획(1967~1986년)의 후속 작업이었다. 1차 종료를 앞두고 2차 계획인 '2000년대를 향한 과학기술 장기 계획 수립(1987~2001년)'에 나선 것이다.

과학기술처는 이 작업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관계자들은 계획 수립을 위해 “바쁘다 바빠”를 외치며 동분서주했다.

이 계획은 국가 미래를 좌우할 중대 사안이었다. 과학기술 육성은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우선 관심사였다. 그해 2월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취임한 김성진 장관은 이 작업에 총력전을 펼쳤다.

과학기술처는 대규모 장기계획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는 경제기획원과 체신부 등 10개 부처 차관보급 인사와 산업계, 학계, 연구계 등 각계 대표 38명으로 구성했다. 매머드급 위원회 구성은 정부의 강력한 과학기술 육성 의지를 보여 주는 일이었다.

위원장직은 권원기 과학기술처 차관이 맡았다. 부위원장으로 홍성원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을 선임했다. 홍 비서관을 부위원장으로 선임한 일은 관계 부처 간 이견을 청와대가 나서서 통합 조율하기 위한 조치였다. 위원회 실무책임은 최영환 과학기술처 기술정책실장이 담당했다.

6월 위원회는 세부 시안(試案) 작성을 위해 11개 분야 전문가 133명을 작업반원으로 위촉했다. 이 역시 대규모였다. 과학기술처는 9월까지 작업반별로 작업한 시안을 가지고 모두 15회에 걸려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협의회를 열었다. 이 내용을 토대로 관계부처 간 협의회를 개최해서 11월까지 시안을 확정했다.

권원기 전 과학기술처 차관의 회고. “장기계획을 구체화하는 작업은 5월부터 시작해 7개월 후인 11월 마무리했다. 우리는 기본목표와 방향, 추진전략, 중점 추진 분야별 발전계획에 대한 장기계획 시안을 작성했다.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12월 열린 대통령 주재로 1985년도 제2회 기술진흥확대회의에서 장기계획 기본뱡향을 보고했다.”

12월 19일. 전두환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1985년 제2회 기술진흥확대회의를 주재했다. 회의에는 노신영 국무총리를 비롯한 전 국무위원과 국회, 과학기술계, 산업계 대표 등 220여명이 참석했다.

오전 10시. 전 대통령이 김성진 과학기술처 장관의 안내로 회의장에 입장했다. “지금부터 제2회 기술진흥확대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김성진 장관이 야심작으로 마련한 '2000년대를 향한 과학기술장기 계획(1987~2001년) 기본방향'과 '중소기업기술집약화 사업 추진현황과 계획'을 슬라이드로 보고했다.

전 대통령은 보고를 받고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제 과학기술 경쟁에서 우리가 번영하려면 과학기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면서 “우리가 대망의 기술선진국에 진입하려면 첨단 과학기술 개발과 기술혁신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대통령은 “우리 산업 구조를 고도화하려면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균형발전이 절실하다”면서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 지원을 지금보다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대통령은 “우리가 수출을 확대하려면 중소부품업체의 수출 비중을 놀려야 한다”면서 “중소부품업체에 대한 첨단 과학기술 개발과 해외 정보 제공, 해외 시장개척 등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지원책을 마련하라”고 당부했다.

김성진 장관은 이에 앞서 2000년대를 향한 과학기술 장기계획 기본방향을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정부는 앞으로 15년이 과학기술 대변혁의 시대가 될 것으로 예상해 오는 2000년 우리나라 과학기술 도달 목표를 세계 10위권 기술선진국으로 정해 이를 일관성 있게 추진하겠습니다.”

김 장관은 “세계 10위권 기술선진국 목표달성을 위해 2000년까지 과학기술 발전의 핵심인 연구인력을 15만명으로 늘리고 과학기술 연구개발(R&D) 투자를 국민총생산(GDP) 대비 현재 1.4%에서 3% 이상으로 높이겠다”면서 “과학기술 중점 추진 전략으로 미래 기술 분야를 5개 군(群)으로 구분하고 달성 목표를 정해 기술선진화를 반드시 이룩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이 제시한 5개 기술 분야 가운데 제1군은 정보화사회를 선도할 전자와 정보, 통신, 기계 자동화, 정밀화학 등으로 분류했다. 과학기술처는 제1군 기술을 최우선 미래 첨단기술개발로 정하고 2000년까지 세계 수준으로 발전시킨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제2군은 에너지·신소재·생명공학·자원·식량 기술, 제3군은 보건·환경·생활정보시스템 기술, 제4군은 미래 개척산업인 해양·항공·우주 기술, 제5군은 공통군으로 기초연구와 엔지니어링시스템 기술 등으로 구분했다.

김 장관은 “이 기본방향은 2000년대 분야별 11개 기술개발 방향을 제시한 것이며, 이를 토대로 1986년 상반기 중 관련 부처 간 협의와 각계 의견을 수렴해서 부문별 사업계획을 국가계획으로 확정해 1987년부터 R&D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보고했다.

김 장관은 이날 보고에서 핵심기술에 대한 구체적인 개발 목표도 제시했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는 현재 256K D램과 1M D램 수준에서 2000년까지 세계 선진국과 대등한 256M D램 및 1G D램 수준으로 발전시켜 독자적인 반도체 설계와 소자, 생산공정 기술을 확보키로 했다.

정보화사회 구현 중추기술인 컴퓨터와 소프트웨어(SW) 기술은 1단계로 슈퍼미니급을 국산화하고, 2단계는 지능컴퓨터기술을 확보하며, 3단계로 이를 국산화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두뇌집약형인 소프트웨어 산업은 단순 개발 단계에서 고도의 소프트웨어 개발 수준으로 육성키로 했다.

통신기술은 소형 교환기 개발 단계에서 2000년까지 선진국 수준의 종합정보통신망을 개발하고 국가기간전산망 구축에 따른 국내 시장 수요 확대에 대비, 민간기업 기술개발도 적극 지원키로 했다.

전기와 자동차 등은 2000년대 우리나라 국민경제를 이끌어 갈 주력산업으로 지정해 설계 엔지니어링과 부품소재, 정밀가공 등에 대한 첨단기술을 확보키로 했다.

과학기술처는 생명공학과 대체 에너지 등을 고부가 신산업으로 중점 육성하고 고기능·고정밀 신소재를 독자 개발키로 했다.

김성진 장관은 “이 같은 핵심기술 개발 목표 달성을 위해 현재 3만2000명인 과학기술 인력을 2000년까지 15만명으로 늘리고, 이 가운데 10%에 이르는 1만5000명은 세계 정상급 두뇌로 확보하겠다”면서 “이공계 대학원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능을 강화하고, 해외 과학기술 두뇌 유치와 해외 연수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연구효율 극대화를 위해 국가연구개발 체제를 확립하고 대학은 산·학 협동을 통해 기초연구와 인력양성에 집중하도록 하겠다”면서 “첨단 과학기술 정보 제공을 위해 정보자원관리 체제를 확립하고 정부출연연구기관은 국책연구, 기반연구, 응용연구 등에 매진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정부 지원기술로 개발한 제품 공급 화대를 위해 정부와 공공기관 구매제도를 개선해서 기술 중심 계획 구매를 실시하고, 중소기업 제품의 민간 수요를 촉진하기 위해 수요자 금융제도를 신설하며 규모도 확대하겠다”면서 “신기술과 신기술제품 보호제를 내실화, 국내 기업의 기술개발 의욕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대덕연구단지를 조속히 건설하고 1990년대는 지역 특성에 따라 연구개발단지를 확산하겠다”면서 “대덕연구단지는 연구·교육·첨단기술을 연계한 과학기술도시로 발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창조적 과학기술 입국 기반을 조성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국제 과학기술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기술선진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현지 진출을 적극 추진하며, 5000여명에 달하는 해외 한국인 과학기술자를 적극 활용해 원천기술 확보와 기술 국산화에 적극 나서겠다”고 보고했다.

김 장관은 “초·중등 학생들에 대한 과학기술 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기존 과학고와 기술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연계한 과학영재 교육제도를 확립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국가 뿌리산업인 중소기업을 새로운 지식과 기술집약화 주역으로 육성해 기술혁신과 국민경제 성장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전 대통령은 이날 김동진 카스 대표, 유무영 제일제당 연구소장 등 우수기술개발 유공자 12명에게 훈장과 포장을 수여하고 이들의 노고를 격려했다. 이들 업체는 각각 우수기술개발 사례를 발표, 참석자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과학기술 장기계획은 한국 과학기술진흥과 과학기술 중심 국가로 가는 미래 15년 청사진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