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반환한 시신 가운데 마지막 시신이 러시아 점령지에서 실종된 우크라이나 여성 기자로 밝혀졌다. 고문 흔적을 감추려는 듯 시신의 훼손 정도가 심각해 국제 사회를 경악하게 만들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2월, 외딴 숲에서 방호복을 입은 작업팀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사자 시신 757구를 전달했다. 시신은 전장에서 사망한 군인들로 이름, 사망한 장소, 번호가 적혀 있었으며, 일부는 사망 원인까지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러나 페이지 마지막에 있는 'NM SPAS 757' 시신은 달랐다. '신원 미상의 남성', '관상동맥의 광범위한 손상'이라는 간략한 설명만 있을 뿐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또한 다른 시신들보다 유독 작고 가벼웠다.
이 시신은 남성이 아니었으며, 군인도 아니었다. 지난 2023년 러시아 점령지역에 잠입 취재에 나섰다 실종된 우크라이나 여성 언론인 빅토리야 로시나(사망 추정일 당시 27세)였다.
시신은 훼손 상태가 심각했다. 발에는 전기 충격을 받은 듯 화상 자국이 있었으며, 머리와 엉덩이에는 찰과상이, 갈비뼈와 턱 아래 목뿔뼈(설골)도 부러진 상태였다. 설골 골절은 목 졸림 피해자에게 자주 나타난다.
뇌와 두 안구, 후두도 적출된 상태였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로시나 기자의 장기가 일부 사라진 탓에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 같은 내용은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 영국 가디언, 우크라이나 우크라인스카프라우다 등 합동 탐사보도를 통해 29일(현지 시각) 알려졌다. 보도는 각 외신과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 '포비든스토리즈'에 공개됐다.

우크라인스카프라우다 소속인 로시나 기자는 2023년 여름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의 블랙 사이트 교도소를 취재하던 중 실종됐다. 그는 이전에도 몇 차례 잠입 취재에 성공해 러시아군의 잔학행위를 폭로한 바 있다.
실종 이듬해 9월 러시아 교도소에 수감된 채 불분명한 이유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10월 러시아 당국은 로시나 기자의 사망 소식을 우크라이나 측에 통보했다. 러시아에 붙잡힌 것으로 알려진 우크라이나 언론인이 사망한 첫 번째 사례다.
로시나 기자는 2023년 7월 말~8월 초 시종됐다. 이후 2023년 12월 러시아 타간로크에 있는 구금 시설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사이 4개월 간 고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설에서 그와 함께 방을 썼던 수감자는 '그의 몸에서 칼에 찔린 자국을 봤다. 손목, 발꿈치 위 부분 등 깊은 흉터가 있었다. 그는 상처를 만지지 말라고 간청했다'고 말했다. 또한 약물을 투여받아 식음을 전폐했다는 증언도 있다.
로시나 기자는 구금된 상황에서 법적 변호를 전혀 받을 수 없었고, 러시아 국방부는 2024년 4월 그의 부모에게 서신으로 체포 사실을 통보했다. 2024년 8월 부모와의 통화 기회를 얻은 그는 가족에게 '9월에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지만 9월 포로 교환에 그는 포함되지 않았다.
올해 2월 우크라이나로 돌아간 로시나 기자의 시신 발목에서 'VV 로시나'라는 글자가 발견돼 생전 이름을 유추할 수 있었다. DNA 검사에서 그의 부모님과 99.9% 유전자가 일치했지만 딸의 끔찍한 죽음을 믿을 수 없다는 부모의 재검사 요청으로 추가 검사가 진행됐고,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시신 곳곳에 남겨진 상처들로 고문 피해의 의심이 강하게 들지만 우크라이나 검찰도, 우크라이나 내외의 언론들도 아직 로시나 기자에게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로시나 기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자를 찾아내 처벌하기 위한 전쟁범죄 혐의 수사에 착수했다.
우크라이나 외교부는 이날 보도와 관련해 “러시아가 납치한 민간인 인질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의 더 큰 관심과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