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 달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소버린 인공지능(AI) 논쟁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소버린 AI 철학을 국가 전략으로 공식 채택하고 100조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발표하면서, 찬반 양론이 격돌했다. “과도한 재정 투입에도 성과 보장이 어렵다”는 회의론과 “글로벌 빅테크 종속을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찬성론이 팽팽히 맞섰다.
하지만 이 논쟁에서 놓치고 있는 중요한 관점이 있다. 우리의 소버린 AI를 단순히 방어적 자립 수단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수출 성장 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가 소버린 AI 확보 경쟁에 뛰어든 가운데, 캐나다가 17억달러, 유럽연합(EU0이 2000억유로를 투자하며 AI 주권 확보에 나서고, 중국이 국가 주도의 강력한 전략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협력형 하이브리드 전략을 바탕으로 공세적 글로벌 파트너십을 펼칠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새 정부가 소버린 AI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100조 투자시대를 선언한 배경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지난 6월 20일 '울산 AI데이터센터 출범식' 사전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베트남 쌀 생산량이 많으면 우리나라가 농사 짓지 말아야 하느냐'는 비유로 소버린 AI에 대한 확고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전국민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신뢰하는 AI는 우리가 직접 개발한 거대언어모델(LLM)로 구현되어야 한다. AI는 더 이상 단순한 고급 검색 도구가 아니라 삶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가속화될 것이다.
우리의 문화, 제도,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외산 AI가 일상 깊숙이 자리잡는다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외국 AI의 왜곡된 답변과 편향성은 사회 분열과 국가정체성 혼란을 초래하고, 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AI는 공공서비스에 활용할 수 없으며, 역사 인식이 부족한 AI는 교육 분야에서 사용할 수 없다. 즉, 공적 영역에서 요구되는 AI는 외산 제품으로 대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AI가 야기할 정보격차다. 최근 외산 AI들은 사용료를 지속적으로 인상하고 있으며, 이는 저소득층의 접근성을 크게 제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 정부의 국가 주도 국민 LLM 개발 의지는 우리를 가장 잘 이해하는 AI를 전국민에게 무상 제공함으로써 포용적이고 통합적인 국가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형 LLM 개발 과정에서 확보할 국제적인 협력 역량이 향후 글로벌 수출의 핵심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한국의 소버린 AI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은 완결된 기술 생태계다. 현재 국가 주도의 한국형 LLM을 새롭게 구축하는 단계이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LLM을 보유한 세계에서 몇 안되는 국가 중 하나다. 이를 뒷받침할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 우수한 AI 전용 칩 팹리스 스타트업들, 전국민이 애용하는 플랫폼 기업들이 하나로 연결된다. 이는 단편적 기술 수출이 아닌 종합적 AI 생태계 수출을 가능하게 하는 고유 강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기업들이 해당 지역의 고객 요구를 우선시하는 협력형 하이브리드 전략이다. 이는 단순히 완성된 제품을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언어적·문화적 특성을 반영한 AI 모델 개발을 고객과 함께 추진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글로벌 빅테크들도 이러한 협력 전략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제한된 자원 환경에서 고품질 AI 모델을 구현한 경험을 통해, 각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효율적인 AI 개발 방법론을 확보했다.
![세계로 확산되는 자국어 기반 AI 주권 움직임 - 지역별 LLM 산업 시장 점유율 데이터(2024년). [자료=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 Precedence Research 보고서 제공]](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5/06/27/news-p.v1.20250627.cab8bee0bc604a36b7b796728a36a6f7_P1.png)
2024년 글로벌 LLM 시장을 보면 북미와 유럽이 62%를 차지하는 반면, 라틴아메리카는 8%, 중동·아프리카는 4%에 불과하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26%의 점유율을 보이지만, 이 중 상당 부분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어 실질적 다양성은 제한적이다. 이는 인구 규모와 경제 성장률을 고려할 때 명백한 기회의 공백을 의미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 지역에서 자국어 기반 AI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빠른 도시화와 높은 문해율, 스마트폰 및 인터넷 서비스 이용률 증가에 힘입어 향후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LLM 시장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보안 이슈로 인해 많은 국가들이 중국 모델 사용을 꺼리고 있어, 신뢰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자국어 기반 AI 주권 확보 움직임은 아시아태평양을 넘어 전 세계적 추세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라틴아메리카 12개국이 지역 특화 LLM '라탐-GPT' 개발에 착수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UAE는 아랍어 AI 모델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고, 태국과 베트남은 자국어 AI 서비스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 역시 54개국의 다양한 언어를 처리할 수 있는 솔루션을 찾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기술적 한계나 자원 부족에 직면해 있다. 바로 여기에 한국의 기회가 있다.
한국의 가장 큰 경쟁력은 기술적 역량을 넘어선 지정학적 신뢰성에 있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많은 국가들이 어느 한쪽에 완전히 의존하기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 제3의 파트너를 찾고 있다. 한국은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면서도 실용적 협력이 가능한 이상적인 파트너다. 특히 정부기관, 금융, 국방 등 민감한 분야에서는 데이터 주권과 보안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한국의 소버린 AI는 신뢰성과 기술력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대안이 된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소버린 AI 전략이 폐쇄형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의 주권을 지키면서도 수출할 때는 각국의 주권을 지켜주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미국과 중국이 AI 기술 패권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한국은 협력과 상생을 기반으로 한 협력형 하이브리드 모델로 차별화된 제3의 길을 제시할 수 있다. 기술 독점이나 일방적 의존이 아닌, 상호 보완적 파트너십을 통해 각국이 자국의 언어와 문화에 맞는 AI 주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각 지역의 언어와 문화에 특화된 LLM 공동 개발, 한국의 AI 반도체와 클라우드 인프라 패키지 제공, AI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을 통해 한국은 기술 제공자가 아닌 동반 성장 파트너로서 역할할 수 있다. 이는 해당 국가에서 자체적인 AI 개발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한국 기업에는 새로운 시장 기회를 제공하는 상호 이익 창출 구조다.
한국이 보유한 GPU 클러스터링 기술, 대규모 모델 훈련 노하우, 클라우드 인프라 운영 경험을 종합적인 패키지로 제공하면서, 글로벌 파트너와 함께 지속가능한 AI 산업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AI 모델 수출을 넘어 AI 생태계 전체의 수출을 가능하게 한다.
소버린 AI 경쟁은 이제 시작 단계다. 아직 대부분의 신흥 시장에서는 자국어 기반 AI 생태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고, 이는 한국의 선점 기회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기회의 창은 영원히 열려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소버린 AI는 고립된 기술 자립이 아니라, 글로벌 파트너십을 통한 상생 성장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한국형 AI 모델 구축으로 축적한 협력 역량을 전 세계와 공유하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한국형 소버린 AI의 진정한 경쟁력이자 미래 비전이다.
조준희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 jhjoh@sw.or.kr
〈필자〉2001년 유라클을 창업해 24년 동안 대표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AI·SW 기업가다. 2021년부터 법정단체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 제18·19·20대 회장을 연임하며 AI·SW산업 발전과 생태계 개선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2022년 대통령 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산업생태계분과위원장직을 맡은데 이어 2023년 민관협력 글로벌DPG얼라이언스 초대 의장, 2024년 국가인공지능위원회 민간위원, 2025년 국가 AI컴퓨팅 인프라 특별위원회 위원에 임명되는 등 산업 발전을 위해 활발한 정책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