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섭의 M&A인사이트] 〈16〉20억년 전의 어느 '인수합병'

김태섭 피봇브릿지 대표
김태섭 피봇브릿지 대표

20억년 전, 지구상에는 아주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덩치는 크지만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만드는 능력이 없던 '거대 세포'가 산소를 아주 잘 다루는 '작은 박테리아'를 삼킨 사건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박테리아는 거대 세포의 먹잇감이 되었겠지만 이들은 놀라운 선택을 한다. 서로를 잡아먹는 대신, 한 몸이 되어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이 사건은 지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인수합병(M&A)(?)사례로 꼽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세포가 우리 몸속의 에너지 공장인 '미토콘드리아' 이고, 이 절묘한 공생을 통해 단세포 생물은 다세포 생물로, 나아가 인간이라는 복잡한 지성체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연계에서 진화는 보통 수백만년에 걸쳐 조금씩 일어나는 점진적 과정이다. 하지만 기업 환경에서의 진화는 그럴 여유가 없다. 시장의 변화 속도는 생물학적 시간보다 수천 배 빠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M&A는 유전적 도약의 수단이 된다. 전통적인 기업이 스스로 기술을 개발하고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점진적 자기복제라면, M&A는 이미 완성된 우수한 유전자를 통째로 이식하는 방식이다.

한편 모든 세포가 박테리아를 삼킨다고 해서 진화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은 소화불량에 걸리거나 서로를 공격하다가 소멸하기도 한다. 비즈니스 세계도 마찬가지다. '승자의 저주' 라는 말이 있듯, 잘못된 M&A는 기업을 파멸로 이끌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훌륭한 경영자라면 다음의 세 가지를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첫째는 '통합'이다. 작은 박테리아가 세포 안에서 제 역할을 하려면 세포의 시스템과 맞아떨어져야 한다. 기업 역시 훌륭한 외부자원을 흡수했다 했더라도 기존 조직문화와 너무 동떨어져 있다면 거부 반응이 일어난다. 인수가 끝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 조직의 일부로 녹여낼지(인수 후 통합·PMI)가 본질이다.

둘째는 '자율성'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안에 살면서도 자신만의 DNA를 따로 가지고 있다. 세포가 미토콘드리아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 들었다면 아마 그 에너지는 발휘되지 못했을 것이다. 인수한 기업의 독창성과 혁신성을 존중해주면서 전체적인 방향성만 맞추는 지혜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시너지'다. 단순히 덩치만 커지는 것은 진화가 아니다. 비대해진 몸집은 오히려 생존에 불리할 뿐이다. 1+1이 2가 아닌, 3이나 5가 되는 확실한 결합 근거가 있어야 한다.

자연사 박물관에 가보면 거대한 공룡들의 뼈가 전시되어 있다. 그들은 한때 지구의 지배자였지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사라졌다. 반면,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았던 세포들은 서로 결합하고 협력하며 오늘날의 인간으로 진화했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잘하려는 '고립된 거인'은 결국 도태된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외부의 우수한 유전자를 기꺼이 받아들여 내 몸의 일부로 만드는 기업만이 다음 세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진화의 변곡점에 서 있다. 과거의 성공 방식이 '성실한 자기 복제'였다면, 미래의 생존 방식은 '공격적인 융합'이다.

김태섭 피봇브릿지 대표 tskim@pivotbridge.net

〈필자〉1988년 대학시절 창업한 국내 대표적 정보통신기술(ICT) 경영인이며 M&A 전문가이다. 창업기업의 상장 후 20여년간 50여건의 투자와 M&A를 성사시켰다. 전 바른전자그룹 회장으로 시가총액 1조, 코스닥 10대기업에 오르기도 했다. 2009년 수출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그가 저술한 〈규석기시대의 반도체〉는 대학교제로 채택되기도 했다. 2020년 퇴임 후 대형로펌 M&A팀 고문을 역임했고 현재 세계 첫 디지털 M&A플랫폼 피봇브릿지의 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