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에 이어 에너지도 한미 협력의 지렛대가 됐다. 양국은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 정상회담을 계기로 LNG와 원자력 등 에너지 분야 협력을 대폭 강화했다. 에너지 안보를 넘어 첨단산업 전력수요 대응, 차세대 원전 연료 확보, 글로벌 탄소중립 전환을 아우르는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안정적 공급망을 토대로 미국의 에너지 안보와 제조업 르네상스를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 LNG와 원전 협력을 양국의 전략적 동맹 차원에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우리는 한국과 알래스카에서 합작 에너지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이며, 한국의 미국산 LNG 구매 확대 약속은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양 정상의 발언 이후 양국 간 다수의 에너지 관련 협력이 체결됐다. 한국가스공사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 트라피구라를 비롯한 미국의 공급업체들과 LNG 장기 도입 계약을 맺고 2028년부터 약 10년간 연간 330만톤 규모의 미국산 LNG를 추가 확보하기로 했다. 이번 물량은 미국 쉐니에르가 운영하는 텍사스 코퍼스 크리스티 프로젝트를 포함해 공급된다. 과거 중동에 집중됐던 도입선을 다변화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원전 협력도 가시화됐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미국 우라늄 농축업체 센트루스와의 협력을 확대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함께 센트루스의 신규 원심분리기 공장 투자에 참여하는 3자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지난 2월 체결한 농축우라늄 공급계약 물량도 늘렸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민간 자본과 함께 안정적 연료 공급망을 확보해 정부 에너지믹스 정책에 부응하고 글로벌 원자력 경쟁력 향상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센트루스는 차세대 원전과 SMR 연료로 주목받는 고순도저농축우라늄(HALEU)을 생산하는 유일한 미국 기업으로, 이번 협력은 자원 안보 강화에 직접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또 한수원은 아마존, SMR 개발사 X-energy, 두산에너빌리티와 손잡고 미국 SMR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다. X-energy의 차세대 SMR 'Xe-100'을 기반으로 아마존이 주도하는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 프로젝트에 설계부터 운영까지 전 주기에 관여할 예정이다. 아마존은 2039년까지 Xe-100을 60기 이상 건설해 5GW 이상 전력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어, 우리나라 원전 기술력이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넓힐 기회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한수원은 삼성물산, 미국 에너지기업 페르미 아메리카와 세계 최대 규모의 첨단 에너지 복합센터 건설 협약도 체결했다. 텍사스주 아마릴로 인근에 추진되는 이 프로젝트는 대형 원전 4기와 SMR, 가스복합화력, 태양광, AI 데이터센터까지 포함하는 11GW급 초대형 사업이다.
다만 이번 한미정상회담 일정 중 거론됐던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간 합작법인(조인트벤처·JV) 설립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수원 관계자는 “JV 설립은 애초 이번 방미 중 계획에 없던 일정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