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기고〉K-Talpiot, 국방과학인재 육성 출발선에 서다

현수 직업교육정책연구소장.
현수 직업교육정책연구소장.

1973년 욤 키푸르 전쟁은 이스라엘에 치명적 충격을 안겼다. 유대 최대 명절을 틈탄 이집트와 시리아의 기습 공격에, 이스라엘은 정보 실패와 전략적 자만으로 전쟁 초반 큰 피해를 입었다. 이 경험은 '군사력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냉혹한 교훈을 남겼고, 6년 뒤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기반을 둔 전략이 실행된다. 그것이 바로 '탈피오트(Talpiot)'이었다.

탈피오트는 군 장성과 과학자가 공동 설계한 과학기술-군사 융합 인재 양성 프로그램으로, 고등학생 시기부터 최우수 이공계 인재를 선발해 히브리대와 연계한 교육을 제공하고, 군복무 중 실전형 R&D까지 경험하도록 했다. 그 결과, 사이버 보안·아이언돔·방산 스타트업 등 탈피오트 출신들은 이스라엘 기술 안보의 중추가 되었다. 이 성공은 단지 제도 때문이 아니라, 그 철학을 끝까지 믿고 밀어붙인 사람들의 결과였다.

철학 없는 제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실현되지 않은 이상은 미래를 바꿀 수 없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K-Talpiot', 즉 국방첨단과학기술사관학교 역시 이 교훈 앞에 서 있다.

우리나라는 이스라엘의 탈피오트 제도를 벤치마킹하여, 현재 운영 중인 「과학기술전문사관」 제도에 더해, 2026년 개교를 목표로 「국방첨단과학기술사관학교」 설립을 추진 중이다. 학사부터 박사까지 연계되는 체계를 갖춘 「설치법」은 이미 제정되었고, 일부 개정 법률안과 시행령도 준비되고 있다.

그러나 제도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겉모습은 갖추었지만 그 속을 채울 철학은 여전히 모호하며, 법적 틀은 마련되었지만 그 법이 가리키는 비전은 뚜렷하지 않다.

과연 우리는 이 제도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 탈피오트를 뛰어넘는 전략적 설계 없이는 우수 인재의 참여도, 제도의 지속성도 담보하기 어렵다. 이에 네 가지를 제언한다.

첫째, 복무 유인과 진로 트랙 설계

탈피오트는 장기 복무 속에서도 민·군을 아우르는 성장 경로가 있었다. 반면 우리는 복무 후 진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 청년들에게 군 복무가 단순히 멈춰 서는 시간이 아니라,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려 미래를 향한 힘찬 '도약의 가속 엔진'이 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혜택과 체계적인 진로 연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기존 제도와의 차별성 확보

현재 운영 중인 과학기술전문사관제도가 올해부터 석사과정으로 확대되었지만, K-Talpiot의 차별화된 존재 이유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왜 필요한가?'에 대한 철학과 명확한 답 없이는 제도는 동력을 잃는다.

셋째, 우수 인재 조기 확보 체계 구축

개교까지 반년도 남지 않았지만, 과학고·영재고 등과의 조기 선발 연계나 대국민 홍보는 미흡하다. 인재는 제도보다 비전에 반응한다. 지금이 바로 그 비전을 보여줄 때다.

넷째, 범부처 실행 기반과 컨트롤타워 마련

21대 국회의장이 주도한 이 제도가 국방부, 교육부, 과기부, 산업부와 교육기관들과의 협력은 칸막이 문화로 부족하지 않은지 우려된다. 인재 선발부터 교육·복무·경력까지 아우르는 통합 설계와 강력한 추진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는 단순한 시행령 마련을 넘어, 실효성 있는 정책 개편과 법령 정비를 통해 국가 전략기술 인재 양성의 큰 그림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까지도 검토하며, 이스라엘의 성공 사례를 뛰어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청년들에게는 명확한 도전의 기회를, 국가에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시해야 한다.

탈피오트도 처음에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군에 묶는다.”는 비판과 함께, 여러 형태의 우려와 반발에 직면했다. 타 병과 및 일반 병사들과의 형평성 문제, 탈피오트 출신이 군 내에서 지나치게 우선시되는 구조, 그리고 대학 내 특혜 논란까지 불거지며 '특권 프로그램'이라는 시선도 존재했다. 일부는 이것이 군대 내 계층화를 심화시킨다고 지적했고, 대학에서는 일반 학생들과의 괴리로 인한 학내 불균형 문제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결국 이스라엘 기술 안보와 국가 전략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Talpiot 출신이 창출한 기술력과 스타트업이 이스라엘의 경제와 국방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제도는 법과 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을 설계하고, 철학을 세우고, 반발을 감내하며 끝까지 밀어붙일 '사람'이 있을 때에만 제도는 비로소 성공한다. 우리에게도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를 완성할 사람, 방향을 제시할 리더십이다.

지금 우리는 인구절벽, 기술 패권 경쟁, 안보 위기라는 복합 도전에 직면해 있다. 특히 중간 간부급 인력 부족은 더는 외면할 수 없는 경고다. K-Talpiot의 성공은 제도가 아니라, 그것을 이끌 사람에게 달려 있다. 지금이 그 출발점이다. 성공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