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온고지신] 2026년 R&D 예산으로 여는 지역의 새로운 도약

오익현 전남테크노파크 원장.
오익현 전남테크노파크 원장.

1980년대 스웨덴의 지방 항구도시 말뫼에는 세계적 조선업체 코쿰스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중국 등 후발 조선강국의 공세 앞에 버틸 수 없었고 해고된 노동자들의 쓸쓸한 뒷모습은 우리에게 '말뫼의 눈물'로 각인되어 있다, 도시도 쇠락해 갔다. 산업혁명의 발상지 멘체스터는 영국, 아니 세계 제조업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과거의 영화는 점차 빛을 잃어 갔다.

이 두 도시는 지금도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말뫼는 말뫼대학을 중심으로 친환경 생태도시, 스타트업이 모여드는 혁신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멘체스터는 디지털·바이오 등 첨단산업도시로 탈바꿈하고 있고 70~80년대 급격히 줄던 인구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그 중심에는 2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멘체스터대학이 있다.

두 도시는 어떻게 부흥할 수 있었을까? 지방정부와 지역 혁신커뮤니티는 도시 부흥을 위한 전략과 세부계획 수립을 주도했다, 중앙정부는 과감한 재정 투입과 규제 개선을 통해 이를 측면지원했다. 한 마디로 그 지역의 특성을 잘 아는 지역 민관이 도시부흥 프로젝트를 주도한 것이 성공의 관건이었다. 경제학원론에도 등장하는 월리스 오츠(Wallace Oates)의 분권화 정리가 현실에서 증명된 사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시선을 우리나라로 돌려보자. 곳곳이 붉게 물든 한반도 카토그램을 보았다. 그런데 수도권만큼은 파랗다. 이상고온 현상을 나타낸 게 아니다. 인구가 급속도로 줄고 있는 시군구를 붉은색으로 표시한 지도다. 가히 수도권 1극체제라 할만한다. 이러한 지역소멸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느낌은 이런 노력이 아쉽게도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전히 우리의 지역 연구개발(R&D)은 중앙정부 과제 수주 중심이다. 매년 여러 부처의 사업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지역은 자체 산업구조와 수요를 고려하기보다 우선 예산 확보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지역산업을 전략적으로 키우기보다는 '유행 기술' 위주 과제수주가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연구성과는 사장되고 사업화로 이어지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6년도 국가 R&D 예산안은 역대 최대 규모인 35.3조원이라고 한다. 그 중 지역 R&D는 1조1000억원으로 전년대비 55%나 증가했다. 지역 현장에 있는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준다. 더욱 반가운 것은 '4극 3특 지역자율 R&D'를 도입하는 점이다. 그동안 중앙정부 주도로 사업을 기획해서 전국으로 공모하던 것을 권역별로 예산을 배분하고 지역이 직접 전략을 세워 R&D를 추진하도록 전환한 것이다. 지역의 수요와 강점을 지역 R&D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물론 사업구조 변경만으로 지역경제 활성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권역별로 배분된 예산이 진짜 혁신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지역자율 R&D는 '예산 나눠먹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역자율 R&D가 실질적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지역의 대학과 테크노파크 같은 지역 혁신기관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결국 '지역자율 R&D'의 성패는 중앙과 지방의 협력에 달려 있다. 중앙정부는 안정적인 재정 지원과 정책의 연속성을 제공하고 지역은 스스로 장기 비전을 세우고 구체적인 발전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중앙과 지방의 협력, 지방정부와 지역 혁신기관의 협력이 맞물릴 때 지역자율 R&D는 진정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말뫼와 맨체스터가 그랬듯이, 우리 지역들도 이제 눈물을 닦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때다.

오익현 전남테크노파크 원장 ihoh@jntp.or.kr

순천=김한식 기자 h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