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영향력' 강조한 페이커… “게임 인식은 시대와 함께 변한다”

페이커 이상혁 선수
페이커 이상혁 선수

'살아있는 전설' 페이커 이상혁이 T1과 2029년까지 장기 재계약을 맺고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 커리어적으로 이미 많은 것을 이뤘지만, 여전히 성장과 발전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남은 기간 동안 스스로를 계속 증명하고 싶다”며 끝없는 도전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상혁 선수는 18일 종로구 롤파크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장기 재계약을 결정한 배경에 대해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아직 배우고 성장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느낀다”며 “스스로를 더 발전시킬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오랫동안 선수로 뛰겠다고 마음을 먹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T1이 선수로서 중요한 것들을 많이 챙겨줬고, 좋은 대우와 명성에 걸맞은 환경을 꾸준히 유지해왔다”며 팀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프로게이머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관련해서는 장기 활동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이 선수는 “과거보다 기성세대가 게임과 e스포츠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좋아졌다고 느낀다”며 “게임의 부정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부분도 있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충분히 조율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이어 “프로 생활을 하며 팬들과 청소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다는 생각도 재계약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T1 외 팀들로부터도 제안을 받았지만 잔류를 선택했다. 그는 “오랫동안 T1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건 팀이 선수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켜줬기 때문”이라며 “한 팀에서 커리어 대부분을 보낸다는 점 자체가 큰 의미”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T1에서 선수 생활을 마칠 가능성도 내비쳤다. 4년 재계약이 종료되면 30대 중반에 접어드는만큼 “지금 계약 구조를 보면 프로 생활 대부분을 T1에서 보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경기 외적으로는 국가대표 무대에 대한 의지도 재확인했다. 이상혁은 내년 아시안게임과 관련해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것은 언제나 선수에게 굉장히 뜻깊은 순간”이라며 “기회가 있고 충분히 보여드릴 수 있다고 판단된다면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밝혔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대해서도 “팀원들이 정말 열심히 해준 덕분에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라이벌과 경쟁에 대한 질문에는 최근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젠지의 쵸비 정지훈 선수를 언급했다. 이 선수는 “요즘 쵸비 선수가 굉장히 뛰어나다”며 “상대할 때 재미있고 보면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고 평가했다. '포스트 페이커'에 대한 질문에는 “리그에는 이미 인기 있고 모범적인 선수들이 많다”며 특정 선수를 지목하지는 않았다.

긴 커리어 속 패배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그는 “과거에는 패배가 분함으로 남았다면 지금은 다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재정의됐다”며 “열정이 식은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성숙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체기를 겪을 때는 원인을 분석하고 휴식과 훈련 방식을 조정하며 체계적으로 극복해왔다고도 밝혔다.

삶에 영감을 주는 요소로는 '독서'를 언급했다. 경기 외적인 영역에서 스스로를 정리하고 돌아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그는 책을 통해 사고를 정돈하고 감정을 가라앉히는 시간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빠른 자극과 즉각적인 반응이 반복되는 환경 속에서도, 독서는 자신을 돌아보고 균형을 유지하게 해주는 장치라는 것이다.

이 선수는 마지막으로 “2029년까지 선수로서 좋은 활약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각오를 밝혔다.

박정은 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