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이 고대역폭메모리(HBM) 16단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세계 최대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내년 하반기 공급을 요청해서다. HBM 16단은 지금까지 상용화된 적 없는 제품으로, D램 적층 등 각종 기술 난제를 먼저 푸는 기업이 차세대 시장 주도권을 쥘 전망이다.
28일 전자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엔비디아는 국내외 메모리 제조사에 내년 4분기 HBM 16단 납품을 요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이 HBM 16단 양산 공급을 위한 본격적인 개발 작업에 착수했다. 구체적인 계약이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내부적으로 초기 생산 물량까지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안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HBM4 12단 공급에 연이어 16단 공급 요청까지 나와 굉장히 빠른 개발 일정을 수립하는 중”이라며 “이르면 내년 3분기 이전에 성능 평가에 착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HBM4는 12단이 내년 초 대량 공급이 예정돼 있는데, 차기 제품인 16단 거래에 속도가 붙은 것이다.
또 다른 업계 고위 관계자는 “해당 제품은 HBM4 16단이 유력하지만 성능과 양산 시점에 따라 세대나 명칭이 바뀔 수 있다”며 HBM4E로 명명될 가능성도 시사했다.

16단은 메모리 3사가 상용화한 적 없는 HBM이다. 현재 엔비디아에 시제품을 주고 양산에 들어가는 건 HBM4 12단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최초 시도되는, 즉 전례 없이 높은 단수의 HBM인 만큼, 기술적 도전 과제가 만만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무엇보다 얇은 웨이퍼 두께를 걱정하고 있다.
기존 12단 HBM은 웨이퍼 두께가 약 50마이크로미터(㎛) 수준이지만, 16단을 쌓으려면 30㎛ 안팎까지 줄여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가 규정한 HBM4 두께 기준은 775㎛다. 기존 HBM3E(725마이크로 ) 대비 약 50㎛ 두껍다. 단수가 높아질수록 얇은 HBM 구현이 어려워서 여유를 준 것이다.
그러나 이번 HBM 16단에서는 JEDEC이 두께를 더 늘리지 않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775㎛ 내에서 더 많은 D램을 쌓아야 한다는 의미다.
두께가 얇아지면 웨이퍼 가공 기술 개선이 필요하다. 웨이퍼가 깨지지 않게 절단하고 연마(CMP)하는 기술이 요구된다. 이같은 기술적 이슈 때문에 일부 메모리 제조사는 새로운 웨이퍼 가공 장비를 도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HBM은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붙여 구현하는데 이 접합 과정도 기술 허들도 지목된다. 본딩으로 불리는 공정이다. 기존 12단 대비 많은 D램 웨이퍼를 붙여야 해 보다 얇은 본딩 소재가 필수다.
현재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열압착 비전도성 접착필름(TC-NCF)을, SK하이닉스는 매스 리플로우 몰디드 언더필(MR-MUF)로 본딩 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본딩 소재 두께는 10㎛ 안팎으로 보다 많은 D램을 적층하려면 이를 줄여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접합 이후 발생하는 열을 잘 빼는 것도 과제”라고 말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