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 경내는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았다.
문민정부 출범 이튼날인 1993년 2월 26일 새벽 5시. 김영삼 대통령(YS)은 평소와 다름없이 관저에서 새벽 조깅에 나섰다.
“이게 뭐꼬?”
현관에 그동안 신던 낡은 운동화 대신 새로 산 깨끗한 운동화가 놓여 있었다.
김 대통령이 수행원을 불렀다.
“내가 신던 신발은 어디 갔노?”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었다.
수행원은 자고 있던 김기수 당시 대통령 수행실장을 급히 깨웠다.
“각하께서 상도동에서 신던 운동화를 찾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김 실장은 순간 아차했다. 사저인 상도동을 담당하는 노량진경찰서장에게 즉시 전화했다.
“급하니 지금 바로 상도동을 경비하는 경찰에게 연락해 각하께서 신던 운동화를 찾아 청와대로 보내 주십시오.”
노량진서 경찰관은 비상등을 켜고 10분여 만에 운동화를 가지고 청와대로 바람처럼 달려왔다.
김영삼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새 대통령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새 신발'을 신는 것이 아니라, 신발 끈을 새로 졸라매는 일이어야 했다.”(김영삼 회고록1). 문민정부 '개혁 드라이브' 시작이었다.
대통령 취임 11일째인 3월 8일. 김 대통령은 이날 오전 7시 30분 권영해 국방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렀다. 조찬을 시작하자 김 대통령이 본론을 말했다.
“권 장관, 오늘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현 국군방첩사령관)을 바꾸려고 합니다. 누가 후임으로 적임자인지 한번 말해 보시오.”
“예?”
권 장관은 말을 잇지 못했다. 육참총장과 기무사령관은 군 요직 중의 핵심이었다. 권 장관은 밥을 먹을 수 없었다.
김 대통령 회고록 내용.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쑥국만 두어 숟가락 뜬 권 장관과 나는 곧장 군 인사 기록 검토에 착수했다. 두 사람만의 극비 작업이었다. 오전 11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각. 김진영 육참총장과 서완수 기무사령관을 해임하고 비 하나회 출신으로 군내에서 존경받고 있던 김동진 연합사 부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김도윤 기무사 참모장을 기무사령관으로 새로 임명했다.”
김진영 총장은 박관용 비서실장과 부산중학교 동기였다. 박 실장도 군 인사 내용을 알지 못했다. 총장 해임 후 박 실장은 김 장군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식사했다. 김 장군이 물었다.
“해임되기 일주일 전에 대통령을 뵈었을 때도 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도대체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김 대통령은 3군 본부가 있는 계룡대를 방문해 김진영 육참총장 등과 조깅도 했었다.
박관용 비서실장이 말했다.
“야, 너는 천상 군인이구나. 정치인의 속을 군인인 네가 어떻게 알겠나?”
이튿날인 3월 9일. 김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 깜짝 놀랐제?”
김석우 당시 청와대 의전수석비서관(전 통일원 차관)도 몰랐던 일이었다. “김 대통령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문민정부가 풀어야 할 큰 숙제 중 하나는 경제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는 대통령 취임 5일 만인 3월 3일. 직접 과천 정부종합청사를 방문했다. 경제부총리와 신임 경제 장관들과 만나 '경제살리기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1993년 3월 19일.
김영삼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 TV와 라디오를 통해 '신경제로 새로운 도약을'이란 제목의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이 담화는 문민정부 신경제 정책의 기본방향으로 '금융실명제' 실시 등이 들어있었다.
“저는 비장한 각오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지금은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 역사적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세계는 경제전쟁, 기술 경쟁의 시대입니다.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해 있습니다. 우리는 도약하지 않으면 낙오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엄숙한 민족 생존의 문제입니다.”
김 대통령은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해 신경제를 제창한다”면서 “신경제는 과거와 다른 경제로 지시와 통제 대신에 참여와 창의가 바탕이 되는 경제를 말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활동을 억제해 왔던 많은 규제가 대폭 줄어든 경제 기업활동이 자유로운 경제가 바로 신경제입니다. 땀흘린 만큼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경제사회 정의가 실현되는 경제가 바로 신경제입니다.”
김 대통령은 “신경제건설을 위해 재정과 금융, 그리고 행정 개혁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금융실명제도 반드시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대통령은 “경제정책 수립과 집행에는 자율성과 일관성, 투명성의 세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고 전제, “자율성이란 경제 운영의 결정권을 가능한 정부에서 민간으로 넘겨주자는 일이고 일관성은 정부 정책이 어떤 경우에도 이랬다저랬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투명성이란 정책 결정 과정과 집행과정에 의혹받지 않도록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경제 회생을 위해 신경제 5개년 계획과 신경제 100일 계획을 수립해 실천할 것입니다. 신경제 계획은 제가 추진할 경제정책의 청사진입니다.”
김 대통령은 신경제 7대 중점 과제도 발표했다. 중점과제는 △경기 활성화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과학기술 투자 확대 △행정 규제 해제△농어촌 구조개선 사업 전개 △생활필수품 가격 안정△의식개혁 운동 등이었다.
“우선 정부가 앞장서겠습니다. 청와대 예산을 먼저 줄이겠습니다. 올해는 공무원 봉급을 올리지 않겠습니다. 정원도 늘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정치자금을 포함해 어떠한 이유로도 돈을 받지 않겠습니다. 규제를 풀고 절차를 줄이면 경제외적인 비용은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그 돈을 기술개발과 근로자 복지향상과 투자 확대에 써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업은 주력업종으로 전문화해 주십시오”
김 대통령은 이어 “국민이 고통 분담에 동참해 달라”면서 “이 길만이 신경제를 성공시킬 유일한 길이며 우리가 고통을 분담할 때 우리 경제의 새로운 도약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 모든 한국경제 제2의 기적을 창조합시다. 우리 모두 신경제를 향해 다시 뜁시다.”
김 대통령의 신경제 담화에 대해 재계는 두 손을 들어 크게 환영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침체 상태에 있는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대통령 결단과 구상에 전폭적인 공감과 지지를 보낸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신경제 100일 계획과 신경제 5개년 계획의 핵심 브레인은 박재윤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전 재무부, 통상산업부 장관)이었다. 그는 김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경제특보였다.
김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밝힌 내용.
“신경제 계획은 내가 1992년 6월 민자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을 당시부터 준비했다. 당시 신경제 입안 브레인은 박재윤 경제특보였다. 1992년 6월부터 각계인사와 경제 전문가, 경제부처 공무원 등 1000여명 이상이 '신경제' 작업에 참여했다. 정치 민주화와 경제 자율화의 정상적인 결합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뉴 플랜이었다.”
신경제라는 명칭은 박재윤 수석이 작명했다.
그는 문민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명칭을 놓고 친구가 하는 광고기획사에 자문을 했다고 한다. 그냥 부탁할 수도 있지만 돈을 주고 만들어야 더 귀중하게 느껴질 것 같아 개인 돈 100만원을 지불했다. 신경제로 잠정 결정한 후 김 대통령 당선자에게 보고했더니 당선자도 매우 흡족해 했다고 한다.
3월 22일. 신경제 100일 계획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주요 내용은 수요 진작을 통한 경기 활성화와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강화, 과학기술 개발 촉진, 행정 규제 완화 등이었다.
신경제 구상은 문민정부가 야심하게 준비한 경제살리기 첫 청사진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