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 농협법 1조로 돌아가야

[ET시선] 농협법 1조로 돌아가야

농협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가 공개되자 '비위'와 '방만'이라는 단어가 먼저 따라붙었다. 키워드만 놓고 봐도 자극적이다. 고액 보수, 기준 없는 직상금, 통제되지 않은 집행 관행. 그동안 누적돼 온 문제가 한꺼번에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번 사안은 단순히 “농협이 또 문제를 일으켰다”는 프레임으로만 볼 게 아니다. 농협이 만들어진 이유, 그리고 지금도 농협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함께 봐야 한다.

농업협동조합법 제1조는 농협의 목적을 이렇게 규정한다.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을 바탕으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높이고, 농업 경쟁력을 강화해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것. 이 문장은 농협이 단순히 금융·유통을 위한 대기업이 아니라 공공성과 협동의 가치를 함께 짊어진 조직임을 분명히 한다.

현실의 농협은 이 목적과 점점 거리를 벌려왔다. 몸집은 재계 상위권 수준으로 커졌지만 운영과 통제 체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협동조합이라는 특수한 지위는 외부 감시를 비켜가는 방패로 썼고, 선거 구조와 느슨한 내부 통제는 관행이 쌓이는 토양이 됐다.

이번 감사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된 문제는 '기준 부재'다. 보수와 수당, 직상금 제도는 존재했지만 산정 기준은 명확하지 않았다. 집행 절차 역시 마련돼 있었으나 이를 점검하고 되돌아보는 장치는 충분히 작동하지 않았다. 관리 체계 허점은 통제 공백으로 이어졌고, 그 사이 관행이 굳어졌다는 분석이다.

이번 특별감사는 그 지점을 아프게 꼬집었다. 문제의 중심이 개인 일탈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는 점, 일부 사례가 아니라 시스템 전반의 문제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래서 이번 감사는 '처벌로 끝낼 사안'이 아니라 '고쳐야 할 사안'에 가깝다.

농협이 스스로 바뀌지 못하면 외부의 개입은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공공성과 시장성을 동시에 가진 조직이 신뢰를 잃을 경우 남는 선택지는 규제 강화 뿐이다. 이는 농협에도 농업 현장에도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이번 감사 이후의 선택이 농협 자율성을 지킬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농협이 가진 순기능은 여전히 크다. 농산물 유통의 마지막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고 금융 접근성이 낮은 농촌에서 사실상 유일한 금융 인프라이기도 하다. 재해와 수급 불안이 닥칠 때마다 농협이 버팀목 역할을 해온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때문에 농협은 해체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제 역할을 회복해야 할 조직이다. 공공성을 가진 만큼 내부 통제는 더 엄격해야 하고, 규모가 커진 만큼 기준은 더 세밀해야 한다. 협동조합이라는 특수성이 느슨함의 변명으로 쓰여선 안 된다.

김종구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이 특별감사 중간결과 브리핑에서 “농협이 자체적으로 감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 대목은 그래서 중요하다. 정부가 모두 들여다볼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은 결국 농협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주문으로 읽힌다.

이번 특별감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농협법 1조에 적힌 목적을 다시 현실의 운영 기준으로 되살리는 작업, 그 출발선이 바로 지금이다. 농협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지켜가는 파수꾼으로 되돌아오길 바란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