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의 하루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간다. 아침에 눈을 뜨고 가족과 인사를 나누며, 친구를 만나 함께 놀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가 있다. 이렇게 쌓인 하루하루가 유년기를 이루고, 그 시간은 아이의 평생을 지탱하는 성장의 토대가 된다. 우리는 당장의 선택 앞에서 아이의 하루가 지니는 가치를 쉽게 놓치곤 하지만, 아이의 삶 전체로 바라보면 이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아이에게 주어진 하루는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교육이 시작되는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이며 아이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간이다.
그러나 요즘 많은 부모님들은 이 소중한 시간을 앞에 두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는 것은 아닐까?” “혹시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질문에는 아이를 향한 사랑과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담겨 있지만, 동시에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불안 또한 함께 담겨 있다.
부모의 선택은 언제나 아이를 위한 최선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 선택을 둘러싼 환경은 점점 더 조급해지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와 치열한 경쟁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부모의 판단은 과도한 비교와 정보의 압력에 영향을 받는다. 주변의 사례와 온라인 정보, 또래 집단의 분위기는 부모의 결정을 앞서가며, '하지 않으면 불안한 선택'을 일상처럼 굳어지게 한다.
이러한 압박과 불안이 실제로 어떤 선택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2024년 실시된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 결과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조사에 따르면 영유아의 사교육 참여율은 47.6%에 달하고, 특히 만5세에 해당하는 연령대에서는 81.2%로 사교육 참여가 사실상 보편화된 수준이다. 유아 기준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3만2000원 수준으로 영유아기 사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그 부담 역시 가볍지 않다.
최근에는 네 살 아이를 대상으로 한 영어학원 입학시험이 거론될 만큼, 조기 경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초등 저학년을 넘어 영유아기까지 선행 중심의 프로그램이 확산되면서, 교육의 시작 시점이 점점 더 앞당겨지고 있다. 이로 인해 조기교육은 일부 가정의 특수한 선택이 아니라, 불안을 줄이기 위한 하나의 대응 전략처럼 굳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흐름이 과연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부합하는지, 더 나아가 아이의 삶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차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빠른 시작과 앞선 경험이 반드시 더 나은 성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영유아기는 인지와 정서, 관계 경험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함께 자라는 시기다. 이 시기의 배움은 얼마나 빠르게 아느냐보다, 무엇을 어떻게 경험하느냐에 의해 형성된다. 아이는 안전하다고 느끼는 환경 속에서 자유롭게 탐색하고, 또래와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조절하는 힘을 기른다.
발달 단계에 맞지 않는 과도한 선행학습과 반복적인 비교는 학습 부담을 넘어 아이에게 정서적 위축과 불안을 남길 수 있다. 결과 중심의 평가와 조급한 성취 요구는 배움의 즐거움을 약화시키고,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내적 동기를 떨어뜨릴 위험도 안고 있다. 육아정책연구소에서 실시한 '영유아기 사교육 경험과 발달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사교육과 성적의 상관관계는 낮았으며, 사교육의 효과 또한 유의미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식을 빠르게 대체하는 시대에,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힘은 무엇일까? 단순한 암기력이나 문제 해결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타인과 협력하는 힘,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그리고 실패를 경험한 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다. 이러한 역량은 정해진 답을 반복하는 훈련으로 길러지기보다는, 다양한 경험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거치며 형성된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규칙을 만들고, 갈등을 조정하며, 상상력을 확장한다. 이 과정 속에서 아이는 세상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며, 타인의 입장을 존중하는 힘을 키워간다. '놀이가 곧 배움'이라는 말은 아이들을 단순히 쉬게 하자는 선언이 아니다. 놀이 속 경험을 통해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교육의 방향을 의미한다.
교육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이 문제를 더 이상 개인의 선택에만 맡겨둘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시간을 조급하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제 정부는 분명한 역할을 해야 한다. 영유아 사교육 문제는 가정의 부담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성장권과 발달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책무와 직결된 과제다.
정부는 과도한 경쟁의 흐름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 부모의 불안을 자극하는 편법적 사교육과 과장된 정보로 아이들의 성장을 왜곡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아동 보호와 교육 정상화의 관점에서 분명한 기준을 세우고 책임 있게 대응하겠다.
동시에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공교육 기관 안에서 충분히 배우고, 놀며,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공교육의 역할을 더욱 강화한다. 교육과 돌봄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부모님들께서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국가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아이의 속도를 믿고 기다리는 길은 때로 불안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걸을 수 있는 힘을 기른 아이는 결국 더 멀리, 더 건강하게 나아간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높은 경쟁의 사다리가 아니라, 충분히 자랄 수 있는 시간과 안전한 공간이다.
아이의 소중한 시간을 지키는 일, 그것이 우리 교육이 가야 할 가장 정직한 길이다. 아이의 하루하루가 배움과 놀이, 쉼이 균형을 이루는 시간으로 이어지도록 정부가 책임을 다하겠다. 아이의 시간이 존중받는 사회, 경쟁보다 성장이 먼저인 교육을 만들어가는 이 길에 국민 여러분께서도 함께해 주시기를 바란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
〈필자〉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1981년 대천여중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전교조 충남지부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집행위원장, 전교조 수석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4년 세종시교육감에 당선된 후 3선에 성공하며 세종교육을 책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