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후반, 국제전화를 이용한 '국제폰팅' 서비스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부가 사업자가 스포츠지·생활정보지 또는 신문에조차 성적으로 선정적인 문구로 게재한 국제전화 이용을 유발하는 '사서함 녹음' 기반의 부가서비스였다. 호기심에 끌려 많은 청소년이 이용했고 수십만원대의 폭탄 고지서를 받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고객·사업자 간 분쟁이 끊이질 않았다.
수익모델은 국제정산 구도를 활용했다. 몰도바, 그레나다와 같이 우리와 거의 교류가 없고 정부의 감시도 느슨한 국가에 교환기를 설치해 국제전화를 걸도록 유도했다. 당사국은 국제정산 수익(초과 착신 통화량×정산 요율)을 챙겼고 국내 통신사는 신규 수요로 이익을 얻기에 제동을 걸 이유가 없었다.
국제전화는 시내·외 전화보다 비싸고 수익성도 높은 프리미엄 유선전화 서비스다. 마치 비행기·버스가 단거리보다 장거리에서 이윤이 남는 이치와 흡사하다. 청소년의 76%가 이용 경험이 있었지만, 당시 뉴스를 보면 시골 경로당에서 누군가 사용해서 찾아내려고 한다는 이장의 인터뷰가 있을 정도로 연령층을 불문했던 듯하다.
1997년 정산 적자는 630억원(약 4000만달러)에 달했다. 당시 우리는 아시아 금융위기로 채무 불이행 상태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었다. 고금리·저환율의 악조건하에 수많은 회사가 청산됐고 회사원이 다량으로 해고됐다.
상황이 이러니 미국이 쌍둥이 적자 해소를 위해 국제정산 이슈를 문제 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국제폰팅에 의한 국부 유출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는 부가 사업자를 구속하고 일간지 광고 게재를 금지했다. 옛 정보통신부는 해외 실태 파악을 위해 도일, 폰팅·전화방 등 이른바 풍속(風俗) 업계를 시찰했다. 공중전화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광고 전단지를 첨부 자료로 붙인 실태 보고서는 내부에서 인기였다는 전언이다.
원화의 평가절하로 국제정산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KT는 국제전화 국가군을 20개로 평소의 2배 늘려 묶은 후 국제정산 적자 국가를 대상으로 요금을 13.4% 인상했다. 후발 사업자인 데이콤·온세통신도 요금을 올렸다. 통신요금은 내려가기만 한다는 '상방 경직성' 신화가 깨진 사례였다. 요금 인상은 비단 수익 방어 차원에서 뿐만이 아니라 사용을 억제하는, 마치 남산 1·3 터널의 통행료 징수가 혼잡을 줄이기 위한 수단인 양 시행된 조처였다.
악조건에서도 우리나라 국제전화시장은 1998년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간 기본통신협정에서 체결된 양허안에 따라 도입된 휴대폰을 이용하는 007(3)xy 별정통신사업자의 시장 진입으로 무한 경쟁에 돌입했다. 다량 해고와 헐값 기업 매각 그리고 구겨진 자존감, 대가는 컸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IMF 구제금융을 상환한 것은 2001년 8월이었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