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장류도 인간처럼 상상력을 동원한 소꿉놀이가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5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 소속 인지 과학자 크리스토퍼 크루페니가 이끄는 연구팀은 영장류의 인지 실험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 대상은 1980년 10월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영장류 연구센터에서 태어난 수컷 보노보 '칸지'다. 지난해 3월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칸지는 뛰어난 인지 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갖춰 유인원계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렸다.

연구팀은 빈 주전자와 컵, 그릇, 병을 준비해 칸지와 가상 놀이를 했다. 빈 주전자를 들어 빈 컵에 주스를 붓는 시늉을 하자 칸지는 주스가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해당 컵을 가리켰다. 이후 해당 컵을 들어 다른 컵에 붓는 행동을 하자 가상의 음료가 어디로 갔는지를 정확히 인식했다.
칸지는 물건을 옮기는 시늉에도 반응했다. 연구팀이 빈 용기에서 포도를 한 알 꺼내 병에 넣는 척했더니, 칸지는 가상의 포도가 어디에 있을지를 예측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진짜 주스와 가짜 주스를 구분했다. 한 컵에는 주스를 붓는 척만 하고 또 다른 컵에는 실제 주스를 부어주고 고르게 하자 칸지는 실제 주스가 있는 컵을 가리켰다. 가상의 움직임을 인식할뿐만 아니라 실제 행동과 구분도 가능한 것이다.
공동 저자인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의 비교심리학자 아말리아 바스토스는 “아이들은 상상력을 이용해 가상의 사물이나 친구와 상호작용하고, 이를 통해 실제 사회적 상황을 연습할 수 있다”며 “역할 놀이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 능력을 향상하는데 유익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는 이번 실험에 칸지만 참여해 결과가 과대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진화인류학자 알렉스 피엘은 “칸지는 보노보 세계의 아인슈타인이다. 칸지의 능력이 다른 보노보 종들의 능력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