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성능을 높이기 위해 각종 첨가제를 넣는 것은 오랫동안 당연한 선택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첨가제 없이 '열'만으로 성능을 끌어올리는 새로운 반도체 기술이 등장했다.
포스텍(POSTECH)은 노용영 화학공학과 교수와 양원렬·박완태 박사 연구팀이 열 증착 공정만으로 차세대 반도체 소자인 고성능 주석 기반 페로브스카이트 P형 트랜지스터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10일 밝혔다.

반도체 성능은 '박막'이라 불리는 매우 얇은 재료층의 품질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박막이 얼마나 균일하고 안정적으로 형성되느냐에 따라 전자가 얼마나 빠르게 이동하는지, 또 얼마나 오래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가 결정된다. 최근 실리콘을 넘어서는 차세대 소재로 페로브스카이트가 주목받는 이유다.
특히, 주석(Sn)을 기반으로 한 페로브스카이트는 전자가 빠르게 이동하고 결함에 대한 내성이 뛰어난 장점이 있다. 그러나 실제 반도체 소자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양(+)전하를 띤 '정공'이 과도하게 생성되면서 전류를 정밀하게 제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수도관 곳곳에 작은 구멍이 생겨 물이 새는 것처럼, 전기가 쉽게 새어나가, 균일하고 안정적인 박막을 만들기 힘들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첨가제, 고온 처리, 용액 공정 등 다양한 방법이 시도됐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들은 대면적의 박막을 균일하게 구현하기 어렵고, 휘어지는 기판에 적용하기 힘들며, 기존 반도체 공정과 호환성도 낮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연구 성과가 산업 현장으로 이어지기 어려웠던 이유다.
연구팀은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널리 활용되는 열 증착 공정에 주목했다. 주석 기반 페로브스카이트 박막(FASnI₃, 포름아미디늄-주석-요오드)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재료를 동시에 증착하는 방식과 순차적으로 증착하는 방식을 비교한 결과, 특정한 조건에서는 첨가제가 없어도 결정 구조가 균일하게 정렬되고 결함이 크게 줄어드는 현상을 확인했다.

연구팀의 P형 트랜지스터는 전류를 정밀하게 켜고 끄면서 전자가 빠르게 이동하는 성능을 보였다. 전기가 얼마나 빠르게 이동하는지를 나타내는 '정공 이동도'는 약 14cm²/V·s, 전기를 켰을 때와 껐을 때 차이를 보여주는 '전류 점멸비'는 약 10⁸으로 순수 FASnI₃ 기반 페로브스카이트 트랜지스터 중 최고 성능을 기록했다. 기존에는 용액 공정을 기반으로 한 0.61cm²/V·s가 최고 수치였다.
이번 연구는 첨가물 없이, 산업 현장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는 열 증착 공정을 활용해 유기 양이온 기반 3차원 페로브스카이트 트랜지스터를 구현한 최초 사례다. 이 기술은 대면적 전자소자, 디스플레이 구동 회로, 웨어러블 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어 차세대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선택지로 기대된다.
노용영 교수는 “저온 공정 열 증착 기반 첨가제 없는 주석 기반 페로브스카이트 트랜지스터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낮은 온도 공정이 필수인 차세대 전자 시스템에 널리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사업, 삼성디스플레이, 글로컬 대학 30 프로젝트 지원을 받아 수행된 이번 연구 성과는 최근 재료·전자소자 분야 국제 학술지 '머티리얼즈 사이언스 앤 엔지니어링 알(Materials Science & Engineering R)'에 게재됐다.
포항=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