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택 교수의 D-엣지]지역화폐의 다음 단계, 지역경제 '순환'을 설계할 때

[송민택 교수의 D-엣지]지역화폐의 다음 단계, 지역경제 '순환'을 설계할 때

인공지능(AI)이 효율성을 높인다고 해서 경제 전체가 같은 속도로 성장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최근 일부 연구에서는 AI가 생산성을 높이더라도 소비 증가로 바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이른바 지능화 시대의 소비 정체 가능성을 제기했다. 생산과 부가가치가 일부 기업과 산업으로 집중돼 소비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지역경제가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지역 상권으로 이어지는 소비 흐름이 약해지면 지역경제 내부에서 성장 엔진이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도 커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역경제에서 발생하는 소득과 소비가 지역 안에서 얼마나 순환하고 있는가다. 지역경제의 활력은 성장률의 수치보다 소비와 거래가 지역 안에서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구조에서 결정된다. 이러한 순환 구조를 강화하는 정책 도구로 지역화폐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지역화폐는 지역 상권의 소비를 지역 안에서 유지하도록 설계된 정책 도구다. 올해 약 24조원 규모의 발행이 예상되는 등 지역경제 정책의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지역화폐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의 소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 왔으며, 온라인 플랫폼이나 대형 유통으로 이동하는 소비의 일부를 지역 상권으로 유입시키는 기능도 수행해 왔다.

도입 초기 지역화폐는 기본소득이나 정책수당을 지급하는 행정 플랫폼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정책 발행 중심 구조에서 일반 발행 중심 구조로 이동했다. 재정 집행 수단에서 지역 소비를 촉진하는 경제 플랫폼으로 기능이 확대된 것이다.

2025년 지역사랑상품권법 개정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법 개정은 이전 정부의 국비 지원 축소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국비 지원 구조를 제도화하고 정책 운영의 안정성을 한층 강화했다. 이를 통해 정책 기반이 정비되면서 지역화폐가 일시적인 경기 대응 수단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 가능한 지역경제 정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토대도 마련됐다. 이제 관심은 지역경제의 순환 구조를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주목해야 할 전략이 외부화다. 지금까지 지역화폐는 주로 지역 주민 중심의 닫힌 구조로 운영돼 왔다. 그러나 관광객이나 외부 방문객, 인근 지역 이용자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정책 구조를 확장한다면 지역경제로 유입되는 소비 규모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지역화폐가 내부 소비를 묶는 장치였다면 이제는 외부 소비를 끌어들이는 플랫폼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

외부화가 지역경제의 규모를 확장하는 전략이라면 지역화폐 인센티브는 이용 기반을 넓히는 정책 수단이다. 지역경제는 화폐가 발행된다고 해서 자동으로 활성화되는 구조가 아니다. 기존 사용자의 이용률을 높이고 비사용자의 신규 이용을 유도하는 장치가 함께 설계돼야 효과도 커진다. 지역사회 기여나 공동체 활동에 참여한 주민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면 자연스럽게 이용도 확대될 수 있다.

최근 제도화 논의가 진행 중인 원화 스테이블코인 등 디지털화폐와의 연계도 고려할 만하다. 이 과정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결제 비용을 낮추고 거래 데이터를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으며 그동안 수동 처리나 사후 정산 등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책 집행 비용도 줄일 수 있다. 특히 스마트 계약은 외부 방문객 유입이나 지역 공동체 활동에 대한 인센티브 지급도 자동으로 집행하게 한다. 동시에 거래 흐름을 보다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어 데이터 기반의 정책 설계와 지역경제 분석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러한 정책들이 현실에서 작동하려면 제도적 기반뿐 아니라 지역 주민과 상인의 수용성도 확인돼야 한다. 지역화폐가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정책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면 이제는 질적인 경제 순환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다.

송민택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pascalsong@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