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2부 낙인 찍히면 끝”…벤처·VC업계, 코스닥 '리그제' 대신 독립 요구

코스닥 시장 세그먼트별 운영안
코스닥 시장 세그먼트별 운영안

금융당국이 코스닥 시장을 '프리미엄·스탠다드'로 나누는 리그제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벤처·VC업계에서는 “사실상 2부 시장을 공식화하는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시장 내 구분이 자칫 '낙인효과'로 이어져 자금 쏠림과 성장기업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벤처업계는 이번 개편안이 코스닥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코스피 2부 시장'이라는 인식을 더욱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프리미엄과 스탠다드로 나뉘는 순간 투자자 인식상 스탠다드는 하위 시장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고, 이는 곧 기업 가치 평가와 자금 조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특히 프리미엄 시장에 대표지수와 ETF가 연계될 경우 자금이 상위 시장에 집중되면서 중소형 성장기업이 밀려나는 '자금 편중'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스탠다드 시장이 하위 리그로 인식될 경우 낙인효과와 자금 쏠림이 발생해 유망 기업의 후속 투자 유치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코스닥 시장의 본질적 문제는 '구조'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스닥은 1996년 모험기업의 자금조달과 회수를 위한 시장으로 출범해 한때 나스닥에 이어 세계 2위 벤처금융 시장으로 성장했지만, 이후 규제 강화와 거래소 통합을 거치며 성격이 크게 변했다. 특히 2005년 거래소 통합 이후 유가증권시장과 운영방식이 동조화되면서 기술·성장 중심 시장이라는 정체성이 약화됐고, 업력·외형 중심의 중견기업 위주 시장으로 재편됐다는 평가다.

이 같은 변화는 시장 기능 저하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상장 심사 기준 강화와 절차 지연으로 기업의 시장 진입이 어려워졌고, 벤처기업의 자금조달 및 회수시장으로서의 역할도 약화됐다. 실제로 상장예비심사 승인 기업 가운데 권장 기간 내 결과를 받은 기업이 극히 일부에 그치는 등 상장 지연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우량 기업의 이탈도 이어지고 있다.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이 코스피 이전 상장을 추진하거나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쿠팡, 네이버웹툰 등은 이미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고, 토스, 야놀자, 무신사 등 주요 유니콘 기업들도 해외 상장을 검토 중이다.

[이슈플러스] “2부 낙인 찍히면 끝”…벤처·VC업계, 코스닥 '리그제' 대신 독립 요구

시장 인식 역시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지난해 11월 벤처기업협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7.3%가 코스닥을 '코스피 이전을 위한 중간 단계 시장'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립적 시장'으로 보는 응답은 26.8%에 그쳤다. 코스닥 상장 벤처기업 비중도 전체의 1.6% 수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벤처업계에서는 단순한 시장 내 구분이 아니라 '지배구조 개편'을 통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거래소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코스닥을 별도 자회사로 분리해 독립적인 운영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민간 주도의 운영 구조를 도입해 기술 중심 평가와 신속한 상장·퇴출이 가능한 시장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코스닥이 나스닥처럼 성장기업 중심 시장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와 함께 차별화된 정책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벤처기업 대표는 “코스닥을 기술기업 중심의 특화 시장으로 명확히 정의하고, 전용 펀드나 세제 지원 등을 통해 투자 유인을 만들어야 한다”며 “지금처럼 코스피 하위 시장으로 인식되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리그제만 도입하는 것은 근본 처방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VC 업계도 보완책 마련이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VC업계 관계자는 “코스닥이 혁신 벤처·스타트업의 종착점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성장 플랫폼이 되려면, 나스닥처럼 상장 이후에도 기업 성장 단계에 맞춰 지속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장기 기관투자자 참여 확대와 유동성 공급을 강화하는 정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