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장병과 암 치료 분야에서 생의학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지만,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PD)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환자 수는 급증하고 있지만, 의료 시스템은 이에 대응할 근본적 해법을 찾지 못한 채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랜디 셰크먼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 교수가 이런 한계 극복을 위해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셰크먼 교수는 2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K-과학인재 아카데미에서 '파킨슨병을 기초과학으로 해결하기'를 주제로 한 기조강연을 통해 연구 성과와 의미, 앞으로의 과제 등을 소개했다.
파킨슨병은 도파민 신경세포가 점진적으로 사멸하는 것이 핵심 원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를 유발하는 분자 수준 메커니즘은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일부 유전자나 단백질, 염증 반응, 신경회로 이상 등이 단서로써 제시됐으나, 치료로 이어질 수 있는 결정적인 접근은 어려운 상황이다.
셰크먼 교수는 과학계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초과학 중심 재정렬'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대표 사례로 '파킨슨병 전반에 걸친 과학 정렬(Aligning Science Across Parkinson's, ASAP)' 프로그램을 꼽았다.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마이클 J. 폭스 재단의 민간 자선 자금으로 추진된 이 프로젝트는 파킨슨병 연구를 근본부터 재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셰크먼 교수는 “ASAP 핵심은 유전자, 신경회로 등 그간의 분절적 연구를 하나의 질병 메커니즘으로 통합하는 것”이라며 “증상 발현 이전 단계의 질병 신호 등 전 주기를 아우르는 연구가 동시에 진행된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런 목표 아래에 모인 각 연구그룹이 국제협력 연구 네트워크(CRN)로 발전, 세계 연구자들이 데이터를 공유하고 공동으로 연구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기존의 경쟁 중심 연구 구조를 탈피한 개방형 협력 모델로, 연구 결과 및 데이터 공개를 전제로 한 구조를 통해 신경퇴행성 질환 이해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CRN은 35개 연구팀을 대상으로 4년간 2억9000만달러 이상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14개 국가 80개 이상의 기관이 참여해 각 연구팀을 구성하고 있으며, 초기 경력의 연구책임자 또한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더불어 제공하고 있다.
다만 셰크먼 교수는 이런 기초과학 중심 전략이 단기간 성과를 불러오기 어렵다는 점을 바탕으로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과 더불어 산업계의 장기적이고 과감한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인희 기자 leei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