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의 넥스트 거버넌스] 〈15〉'지능형 연대'로, 지방의 내일을 묻다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지방선거의 계절이다. 거리는 각양각색의 현수막으로 뒤덮였고, 후보들은 '지역 경제 살리기'와 '천지개벽'을 약속하며 허리를 숙인다. 하지만 그 화려한 약속 뒤편에서 우리 지방의 시계는 '소멸'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인구 유출과 고령화로 지방은 유령도시가 되고 수도권은 과밀로 터져 나가는 이 모순적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위기를 타개할 '시스템'을 논하고 있는가.

필자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시절, 지자체장들이 가장 많이 들고 온 민원은 '지역 벤처밸리 조성'이었다. KTX로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 되었음에도, 지자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형태의 특화 단지와 인프라를 요구했다. 그 절박함은 충분히 이해하나 구조가 문제였다. 혁신 생태계는 자원의 집적과 연결이 핵심인데, 지자체가 담장 안에 자신들만의 벤처밸리를 소유하려는 것은 집적의 경제(Agglomeration Economy)를 거스르는 접근이었다. 결국 그 노력은 '복제형 행정'에 따른 중복 투자로 귀결될 뿐이었다. 이 경험은 국가 차원에서 자원을 보다 전략적으로 재배치해야 한다는 과제를 분명히 보여줬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설계도를 그려야 하는가. 인구 감소를 먼저 경험한 선진국들의 시행착오는 하나의 나침반이 될 수 있다. 필자가 주목하는 방향은 '한국형 콤팩트 시티'다. 인구가 줄어드는데 도시 기능을 무분별하게 분산시키면 세금이 서비스 유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핵심은 도시 하나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생활권 단위로 여러 지자체가 기능을 나눠 하나의 도시처럼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모든 지자체가 대형 병원·대학·산업단지를 갖출 필요는 없다. 한 지역은 의료 거점으로, 인근 지역은 교육이나 물류 거점으로 특화할 수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 대형 병원이 없더라도, 인접 지역의 병원에 30분 내 접근이 가능하고 대중교통이 이를 연결한다면, 그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지역 설계다. 물론 이러한 모델이 작동하려면 지자체간 협력과 주민 설득이 필수다. 결코 쉬운 길은 아니다. 그러나 단기적인 표심을 겨냥한 선심성 공약으로는 20~30년 뒤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별 최적'이 아니라 '권역 단위 최적'을 설계하는 리더십이다.

이제 질문은 명확해진다.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어떤 리더를 선택해야 할까. 도로를 닦고 건물을 올리는 '토목형 리더십'의 시대는 끝났다. 위기를 타개할 시스템 설계자는 세 가지 역량을 증명해야 한다.

첫째, 데이터 리터러시다. 감(感)이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해 현실을 직시하고, 성장의 환상이 아닌 '관리 가능한 수축'을 설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둘째, 연대의 설계 역량이다. 내 경계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독립 왕국' 사고를 버리고, 인접 지자체와 자원과 서비스를 공유하는 광역 연대 모델을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실행 가능한 방법론이다. '어떻게(How)'가 빠진 공약은 공약(空約)일 뿐이다.

지방 소멸의 해결책은 더 이상 중앙의 시혜적 예산 지원에 있지 않다. 지자체장들이 스스로 칸막이를 허물고, 지역 간 경계를 넘어 데이터와 인프라를 통합하는 지능형 연대를 구축할 때 비로소 길은 열린다.

이번 지방선거는 단순히 단체장을 뽑는 행사가 아니다. 우리 고향이 지도에서 사라질지, 아니면 작지만 강한 공동체로 남을지를 결정하는 절체절명의 갈림길이다. 유권자는 이제 후보의 이름표가 아니라 그가 들고 있는 '지역 생존 설계도'를 심판해야 한다. 지방자치는 정치적 수련장이 아니며 중앙에서 밀려난 '정치 낭인'들의 재기 발판이 아니다. 정치가 아닌 실력이, 소유가 아닌 연결이, 말이 아닌 설계가 지방의 내일을 바꿀 마지막 열쇠기 때문이다.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