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디지털 지도 전쟁 2막, 대한민국 공간정보 굴기

김인현 한국공간정보통신 대표
김인현 한국공간정보통신 대표

대한민국은 이제 지도 반출 방어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공간정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 도약을 목표로 하는 '공간정보 굴기'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지도는 더 이상 길 찾기 서비스나 편의 기능이 아니다. 지도는 좌표, 속성, 관계가 결합된 구조적 데이터이며, 국가 인프라이자 미래 산업 경쟁력의 출발점이다. 지난 2월, 정부는 18년 만에 구글의 1대5000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을 조건부 허가했다. 1라운드는 끝났다. 이제 질문은 반출의 찬반이 아니라, 우리가 다음 막을 어떻게 관리하고 준비하느냐다.

지금 지구에서는 실제 전쟁도 벌어지고 있지만, AI·통신과 결합한 데이터 전쟁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스페이스X는 1만1000여기의 스타링크 위성을 운용하며 저궤도 통신 지배력을 넓히고 있고, 중국은 베이더우로 독자 위성항법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유럽의 갈릴레오, 러시아의 글로나스(GLONASS)도 각자 주권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위성과 위치정보 체계를 장악하는 자가 디지털 지도 전쟁의 주도권을 쥔다. 이 경쟁은 단순한 기술 개발이 아니라 데이터 주권을 둘러싼 국가 전략의 싸움이며, 세계는 이미 공간정보를 둘러싼 기술 패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이 디지털 데이터 전쟁이 무서운 이유는 비가역성에 있다. 지도 데이터는 한 번 외부로 이전되면 되돌릴 수 없고, 이미 학습된 AI 모델과 파생 데이터는 통제 밖으로 나간다. 지도는 보는 정보가 아니라 연결되고 학습되는 정보다. 디지털 트윈, 소버린 AI, 피지컬 AI 모두 정밀 공간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원천 데이터를 놓치는 순간 출발선부터 밀릴 수밖에 없다. 조건부 허가 조건들이 실제로 작동할지도 불확실하다. 한 번 글로벌 플랫폼 학습 체계에 편입된 데이터는 다시 경쟁력으로 회수하기 어렵다. 이번 반출 허가 과정에서 드러난 미비한 법·제도를 서둘러 보완하고, 추가적인 데이터 유출을 막는 것이 2막의 첫 과제다.

다행히 대한민국에는 글로벌 공간정보를 구축할 자산이 이미 있다. 전 세계를 0.3m 수준으로 정밀하게 관측할 수 있는 독자 위성이 있고, 국토지리정보원의 1대 5000 수치지형도는 이 수준 정밀도를 전국 단위로 구축한 나라가 세계에서 손에 꼽힌다는 점에서 희귀한 자산이다. 여기에 우주항공청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의 위성 기반 관측 역량, 한국국토정보공사(LX)의 현장 조직, 국토연구원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연구 역량,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한국교통연구원·공간정보품질원·공간정보산업진흥원·ITS코리아가 자율주행과 스마트 모빌리티 분야에서 축적해온 공간정보 기술이 더해진다. 네이버지도·카카오맵·티맵이 쌓아온 생활권 데이터와 대규모 이용자 기반도 무시할 수 없다. 공간정보 전문 민간 기업이 지자체와 공공 시스템 현장에서 28년 이상 축적한 실전 경험 역시 어떤 보고서도 대체할 수 없는 자산이다.

그러나 자산이 있다고 곧바로 이기는 것은 아니다. 기관은 흩어져 있고, 정책은 칸막이에 갇혀 있으며, 민간 기업은 공공 수주 구조에 묶여 있다. 이대로라면 디지털 트윈도, 소버린 AI도, 피지컬 AI도 각자도생 속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한국에 부족한 것은 기술보다 그것을 하나로 묶는 전략과 실행 체계이며, 그 생태계 안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전문 기업들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흩어진 공간정보 체계를 통합할 국가 차원 컨트롤타워다. 공간정보청 수준의 거버넌스를 갖추고 연구 인력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둘째, 국내 정밀도 고도화와 글로벌 플랫폼 진출을 함께 추진하는 이중 전략이다. 국내는 더 정밀하게 가고, 시야는 세계 시장으로 넓혀야 한다. 셋째, 오픈소스 공간정보 생태계와 전략적 연합이다. QGIS와 오픈 스트리트 맵 등 글로벌 오픈소스 진영과 소프트웨어·데이터 양면에서 협력하는 것은 기술 종속을 피하면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효과적인 경로다. 구글과 맞서는 길은 폐쇄가 아니라, 주권을 지키는 개방이어야 한다.

무기는 이미 손에 있다. 부족한 것은 의지와 설계다. 대한민국이 데이터를 넘기는 나라로 남을 것인지, 세계의 공간을 설계하는 나라로 나아갈 것인지, 디지털 지도 전쟁 2막은 이미 시작됐다.

김인현 한국공간정보통신 대표 ihkim@ksic.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