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산업의 쌀' 나프타, 전쟁에 발 묶였다…비축·다변화 전략 필요

석유화학제조과정과 용도
석유화학제조과정과 용도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나프타(납사)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나프타가 산업의 기초 원료인 만큼 공급 불안이 전 산업계로 충격이 확산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다운스트림 제품 수입과 콘덴세이트(초경질유)를 활용한 나프타 생산 확대 등 단기 대응과 함께 비축 및 공급망 다변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석유화학 업계가 보유하고 있는 나프타 재고는 2~3주 분량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나프타 수급에 차질이 발생했다. 국내에서 사용되는 나프타의 절반 가까이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수입산 나프타 중 70% 이상은 중동산이다. 전쟁의 여파로 원유 수급까지 흔들리면서 나프타 생산 기반도 불안정해진 상황이다.

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화학물질로, 에틸렌·프로필렌 등을 생산하는 핵심 원료다. 나프타 공급 불안으로 에틸렌·프로필렌 등의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게 됐다. 에틸렌은 플라스틱, 비닐, 고무, 건축자재 등에 사용된다. 프로필렌은 전자부품, 필름, 합성섬유, 페인트, 화장품, 의약품 등에 사용된다.

이 때문에 나프타 공급 차질은 범용 플라스틱을 넘어 자동차·건설·섬유 등 주요 산업 전반에 연쇄적인 생산 차질을 초래할 수 있다.

가격도 급등세다.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직전인 지난 2월28일 나프타의 가격은 배럴당 68.87달러였지만 지난달 31일에는 141.72달러를 기록했다. 한 달 만에 두 배 이상 급등한 것이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가격 변동성도 확대되고 있다.

추가 리스크도 존재한다. 홍해까지 봉쇄될 경우 공급 공백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홍해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핵심 해상 물류 경로로, 친이란 성향의 예멘 후티 반군의 위협이 지속되고 있다. 홍해 봉쇄가 현실화될 경우 유럽산 나프타 도입이 어려워지고 원유 도입에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나프타 수급 불안이 장기화되면서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셧다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LG화학은 여수 2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롯데케미칼, 여천NCC, 한화솔루션은 고객사에 불가항력 가능성을 고지하기도 했다. 대한유화, 한화토탈 등은 감산에 돌입했다.

정부는 나프타 수급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문신학 산업통상부 차관은 1일 서울 무역보험공사에서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 대표들과 '석유화학 업계 수급 안정 및 공급망 점검회의'를 갖고 △나프타의 안정적 확보 총력 △석유화학제품의 국내 물량 공급 책임 관리 △범정부 공급망 대응 체계 상시 가동 등 3대 원칙을 확정했다.

구체적으로 이번 추가경정예산안에 4695억원을 편성해 나프타 수입 단가 상승분에 대한 차액을 보조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기업의 대체 물량 도입 부담을 덜어준다는 구상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나프타 수출 제한 조치 등 국내 생산과 공급을 유지하기 위한 전방위적 수단도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또 보건·의료용품, 핵심 산업 부품, 생필품 등 국민 생활에 직결된 필수 석유화학 제품의 국내 물량 공급은 정부가 책임지고 철저히 관리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시장 불안을 부추기는 매점매석 등 유통질서 교란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응할 방침이다.

이어 '중동전쟁 공급망 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원료 수급과 가격 동향, 국내 생산 차질 여부를 실시간으로 점검할 예정이다. 이상 징후 포착 시 즉각적인 조치에 나선다.

석유화학 업계도 나프타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LG화학은 러시아산 나프타를 2만7000톤(t) 확보했으며 타 석유화학 업체들도 중동에서 벗어난 수입처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전쟁 여파로 공급 자체가 크게 감소해 주요 국가들도 나프타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단기간 내 수급 안정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단기 대응과 함께 구조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의료용 등 시급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다운스트림 제품을 수입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며 “시장에서 확보할 수 있는 미국산 콘덴세이트를 활용한 나프타 생산 확대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나프타는 수급 충격에 매우 취약한 구조다. 수급 위기에 대한 매뉴얼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나프타를 비축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며 중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공급망 다변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또 수급 대란이 발생했을 때 우선 순위를 정해 대응하는 전략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성우 기자 good_s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