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칼럼>고교학점제, 과목선택이 어려워졌다

진동섭 한국진로진학정보원장
진동섭 한국진로진학정보원장

학교생활기록부를 정성평가 해서 선발하는 제도는 2008 대입부터 시작되었는데 본격적으로 이 제도가 확대된 것은 2009 개정 교육과정 시기부터이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이 고등학교에 적용된 것은 2011년부터였고 대입에는 2014학년도 대입에 적용되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은 공통과목도 없이 모두 선택과목이어서 학생이 더 많이 선택해야 했었다. 이후 2015 개정 교육과정은 1학년 공통과목과 2, 3학년에서 주로 이수하는 일반 선택과목, 진로 선택과목으로 구성되었고, 고교학점제에 해당하는 2022 개정 교육과정도 공통과목과 선택과목으로 이루어진 교육과정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즉 과목 선택 교육과정은 이미 20년 가까이 되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으로 운영되는 고교학점제에서 진로가 특히 문제로 부상한 까닭은 고교학점제 초기에 고교학점제를 정의할 때 '진로에 맞게 과목을 선택'한다는 점을 강조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로에 맞는 선택은 고교학점제에 와서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고 이전 교육과정 때부터 있는 일이다. 대부분 대학은 고등학교 학생이 지원하는 학문에 필요한 과목을 일반고 수준에서 잘 배우기를 원한다. 공대라면 미적분Ⅱ와 과학의 선택과목 중 필요한 과목을 잘 배우기를 원한다. 이런 내용은 대학이 발표한 핵심 과목 및 권장과목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진로에 맞는 선택'이라는 말의 의미는 아주 무겁지는 않다.

고교학점제에서 진로에 맞는 선택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전 교육과정과는 다른 몇 가지 차이점 때문으로 보인다. 우선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과목 수가 많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국어과에는 공통과목인 국어와 일반선택 4과목, 진로 선택 3과목으로 선택과목은 7과목이었다.

그런데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공통과목인 공통국어1, 2와 일반선택 3과목, 진로 선택 3과목, 융합 선택 9과목으로 늘었다. 수학과도 선택과목은 7과목에서 9과목으로 늘었다. 사회는 선택과목이 12과목이었는데 19과목으로 늘었다. 과학은 과학Ⅱ 4과목이 8과목으로 늘었다. 이렇게 과목이 대폭 늘어나다 보니 어떤 과목을 선택해야 대학 공부에 도움이 되는지 알기 어렵게 되었다. 제7차 교육과정 때부터 고시된 과목 중 학생이 선택하지 않아 유명무실한 과목들이 있었는데 2022 개정 교육과정도 이런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향후 개정될 교육과정에서는 이런 문제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에듀플러스]<칼럼>고교학점제, 과목선택이 어려워졌다

또 하나의 원인은 진로 목표를 세우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앞으로는 융합 인재가 필요한 세계라는 둥, 전공자율선택제로 진로와 무관하게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이 확대되고 있다는 둥 진로를 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가 여러 경로로 퍼지고 있다. 그런데 대학은 핵심 과목과 권장 과목을 최소한의 숫자로 선정하여 발표하여 학생이 대학 공부에 필요한 과목을 배워 오라고 알리는 중이다. 학생 입장에서 보면 원하는 진로가 수학과 과학의 일부 과목을 필요로 하는 분야를 전공할 것인지 정도 정하면 된다. 학생은 공대를 지원하면서 물리학과 화학을 선택하지 않아도 불리하지 않을까를 생각하니 선택이 난감하다.

현행 교육과정은 과목 선택형 수준별 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의 전자공학 분야에서 일반물리를 배우는 대학도 있고 전자기학만 떼어내서 배우는 대학도 있듯이, 고등학교 단계에서도 전자기와 양자를 이수하지 않아도 유사 과목을 선택해서 기본적인 지식을 배울 수도 있다. 원하는 대학에서 고등학교 단계에서 전자기와 양자를 배워야 공부할 수 있는 과목부터 배운다면 학생은 고등학교에서 전자기와 양자를 배우면 된다.

말은 쉬운데 선택은 쉽지 않다. 대부분 대학이 핵심 과목이나 권장과목이라고 제시한 과목은 학생이 이수하기를 희망하는 과목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과목들은 AI 전성시대에도 변함없이 공부해야 하는 과목들이라는 점이다. 시대가 달라져도 수학과 과학이 공부의 기본이 되고, 문·사·철로 구성된 인문학이 사람다움의 기본이 된다. 쉽게 공부해서 대입에 또는 취업에 성공하는 비결은 없을까? 답은 “없다”

진동섭 한국진로진학정보원장

◆진동섭 원장은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이사와 교육부 교육과정심의회 위원을 역임했으며, 서울대 입학사정관과 서울교육청 진학지도지원단 운영위원장을 지냈다.

이지희 기자 eas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