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수출 '역대 최대' 전망은 착시… 반도체 단가 인상 기댄 불안한 호황

중동전쟁 장기화와 AI·서버 수요 확대 등으로 메모리, 그래픽카드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14일 서울의 한 가전매장에 데스크탑 메모리가 진열돼 있다.
 김민수기자mskim@etnews.com
중동전쟁 장기화와 AI·서버 수요 확대 등으로 메모리, 그래픽카드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14일 서울의 한 가전매장에 데스크탑 메모리가 진열돼 있다. 김민수기자mskim@etnews.com

올해 우리 경제가 사상 최대 수출과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는 실질 생산 물량 증가가 아닌 반도체 '가격 폭등'에 기댄 착시에 불과하다는 게 국책연구기관 경고다. 반도체와 정보통신기술(ICT) 부문을 제외하면 사실상 수출이 '역성장' 중인 만큼, 단기 실적에 도취하지 말고 초격차 미래 산업에 선순환 재투자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산업연구원은 26일 이런 내용을 담은 '2026년 하반기 경제·산업 전망'을 발표했다. 연구원은 올해 하반기 경제가 상반기의 회복 흐름을 이어가며 역대 최고 수준의 수출 실적(약 9400억~9500억달러)을 달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펀더멘털(기초체력)의 회복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연구원 설명이다. 전체 수출액의 30~40%를 반도체가 견인하고 있는데, 이는 낸드플래시와 DDR4·DDR5 등 주력 제품의 단가가 전년 대비 400~800%가량 폭등한 데 따른 '가격 효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구원이 반도체와 ICT 기기를 제외하고 산출한 작년 기준 수출 실적은 오히려 1.1% 역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 인상이 재무 상태와 국민소득 지표에 단기적인 '보너스 효과'를 주며 구조조정의 시간을 벌어준 것일 뿐, 근본적인 생산 확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분석했다.

경제 전반을 나 홀로 이끄는 반도체 호황의 지속성에도 의문 부호가 달렸다. 지금의 랠리는 일반 소비자의 IT 기기 수요 회복이 아니라,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과열된 인공지능(AI) 중복 투자에 의존하는 기형적 구조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오픈AI 등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의 투자가 일단락되거나 초경쟁 국면이 진정되는 내년 초쯤이면 호황 사이클이 멈춰 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역대급 수출'에도 불구하고 고환율이 꺾이지 않는 현상도 우리 경제의 뇌관이다. 과거에는 수출 호조와 증시 훈풍이 불면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는 것이 공식이었으나, 최근에는 이 흐름이 역행하고 있다. 중동 전쟁 등 동아시아 지정학적 리스크가 가중된 데다, 수출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사내에 유보하거나 해외 직접투자에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거센 추격을 벌이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연구원은 정부가 앞장서 기업에 유입된 막대한 잉여 자본을 부동산 등 비생산적 자산 시장에 묶이지 않고, 피지컬 AI, 초전도체, 소형모듈원전(SMR) 등 미래 첨단기술 분야에 재투자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