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클러스터 앞 '수도권 장벽'…경기도, 정부에 재검토 요청

경기 남부 공급망·기업 투자계획 영향권 진입
메가클러스터 신청요건 '수도권 외' 조항 쟁점
소부장 협력사·글로벌 장비기업 투자 판단 변수
특별법 지원 대상 제외 가능성에 법리 검토 필요

경기도청 전경.
경기도청 전경.

경기도가 반도체특별법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거론된 '수도권 외 지역' 요건에 대해 정부에 재검토를 요청하기로 했다.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용인·평택·화성·이천 등 경기 남부 반도체 벨트가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지정 신청 대상에서 제외될 경우, 기존 반도체 공급망과 기업 투자 계획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26일 경기도와 반도체 업계 등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가 마련 중인 반도체특별법 시행령안에는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지정 신청 요건으로 '국토 균형발전에 기여할 것'과 '수도권 외 지역일 것'이 포함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조항이 확정되면 수도권에 있는 기존 반도체 생산 거점과 신규 투자 예정지는 메가클러스터 지정 신청 단계에서 배제될 수 있다. 기반시설, 인허가, 세제·재정 지원 등 특별법에 따른 지원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기도에는 국내 반도체 출하액의 78%, 부가가치의 84%, 종사자의 68%가 집중돼 있다. 전국 반도체 산업기술인력의 59%도 도내에 몰려 있어 국내 최대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꼽힌다.

정부는 앞서 용인·평택·화성·이천 등을 중심으로 경기 남부 반도체 벨트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이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 계획을 추진해 왔다.

경기 용인 L자형 반도체 벨트 세메스 위치도.
경기 용인 L자형 반도체 벨트 세메스 위치도.

그러나 시행령안이 확정될 경우 대기업 투자 일정에 맞춰 생산시설을 확충해 온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협력업체들이 정책 지원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공장 확장과 설비 투자에 이미 자금을 투입한 중소·중견기업일수록 금융 부담과 투자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화성의 한 반도체 장비업체는 대기업 생산라인 증설에 맞춰 설비 확충을 검토해 왔으나, 시행령안에 수도권 배제 요건이 반영될 경우 향후 정책 지원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정부 발표와 투자 로드맵에 맞춰 공장 증설을 준비해 왔다”며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정책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면 투자 계획을 다시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책 불확실성이 글로벌 반도체 장비기업의 투자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ASML, 램리서치,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등은 경기도에 연구·생산 거점을 확대해 왔다. 시행령 단계에서 기존 반도체 집적지를 배제하면 한국 투자 환경의 예측 가능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장기간에 걸쳐 조성되는 산업 기반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부지 확보와 인허가, 팹 건설, 장비 반입, 시험생산, 협력사 입주, 전문인력 양성까지 단계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형성된 공급망과 인력풀이 정책 지원 대상에서 빠지면 신규 투자와 인력 양성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리적 쟁점도 남아있다. 반도체특별법은 일부 신청 요건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지만, 법 본문에는 '수도권 제외' 규정이 직접 명시돼 있지 않다. 시행령만으로 특정 지역의 신청 자격을 제한하는 방식이 적절한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기도는 비수도권 반도체 산업 육성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수도권을 원천 배제하는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수도권에는 추가 인센티브를 부여하되, 기존 경기 남부 반도체 벨트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설계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SK하이닉스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조감도.
SK하이닉스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조감도.

경기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은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 핵심 전략산업”이라며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도내 기업과 협력업체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산업계 의견을 정부에 적극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시행령 발표 시기와 내용은 정부 내 협의 중이며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수원=김동성 기자 est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