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칼럼] 영화산업 위기 극복, 극장과 OTT 상생의 길 모색해야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이 오랜 침체를 겪어온 극장가에 모처럼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다시는 1000만 영화가 나오기 어렵다는 비관론이 팽배하던 상황에서, 콘텐츠의 재미가 담보된다면 극장은 언제든 관객을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러나 이 반가운 소식에는 어김없이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우려가 따라붙는다. 주말 특정 작품의 상영 점유율이 절반을 웃돌고, 다른 영화는 스크린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관객의 선택지가 좁아진다는 지적이다. '왕과 사는 남자'의 선전으로 극장은 살아났지만, 영화 생태계 전체의 동반 성장으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 비판을 단순히 배급사나 극장의 탐욕 문제로 환원하기는 어렵다. 그 이면에는 소수의 흥행작에 수익 전체를 의존할 수밖에 없는 극장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고정비는 크고 관객 회복은 더딘 상황에서, 흥행이 검증된 작품에 상영을 집중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에 가깝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은 결국 극장 운영 기업 전반의 불안을 반영하는 증상이지, 원인이 아니다.

이러한 불안감은 자연스럽게 홀드백 의무 법제화 요구로 이어진다. 극장 개봉 이후 OTT 유통까지의 유예 기간을 법으로 강제해야 극장을 보호할 수 있다는 논리다. 취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이 방향이 글로벌 시장의 흐름과 배치된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팬데믹을 거치며 미국은 극장 독점 기간을 90일에서 45일 안팎으로 오히려 줄였고, 유럽 주요국들도 유사한 방향으로 유통 구조를 조정하고 있다. 플랫폼 다양화에 따라 유예 기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조사 결과도 시사점을 던진다. 관객이 극장을 찾지 않는 주된 이유는 '볼 만한 영화가 없다', 그리고 '티켓 가격 부담'이라는 것이다. 반면, 'OTT로 볼 수 있어서'라는 응답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홀드백 규제가 극장 수익성의 근본적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오히려 가격에 민감한 관객의 합리적 선택권을 제한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 산업이 나아갈 방향은 어디인가. 이 질문에 대해 영화 '휴민트'가 하나의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류승완 감독의 이 영화는 평단의 호평에도 극장 누적 관객이 200만명에 머물렀다. 흥행 측면에서는 아쉬운 결과였지만, 오히려 '휴민트'는 글로벌로 진출해 활로를 찾는 선택을 했다.

지난 4월 1일 넷플릭스를 통해 33개 언어 자막과 20개 이상 언어 더빙을 지원하며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공개됐다. '휴민트'는 공개 직후 단 이틀 만에 글로벌 1위에 오르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인했다.

손익분기점을 극장 티켓 판매로 넘지 못했더라도, 유연한 비즈니스 결정을 통해 새로운 모델을 찾을 수 있는 길을 보여준 것이다. 국내 극장에서 충분히 소화되지 못한 상업적 가치가 글로벌 스트리밍을 통해 비로소 온전히 실현됐다고도 볼 수 있다.

제작사의 관점에서 이 선택은 단순한 차선책이 아니다. 극장에서 작품성이 검증된 콘텐츠가 글로벌 OTT의 유통망과 결합해 해외 시장으로 뻗어나가는 이 구조는, 국내 제작 생태계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전략적 경로가 될 수 있다. 극장은 콘텐츠의 질을 검증하는 공간으로, OTT는 그 가치를 확장하는 플랫폼으로 각각의 역할을 분담하는 셈이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대체하는 구도가 아니라, 서로 다른 국면에서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협력 관계다.

극장과 OTT를 제로섬 경쟁의 프레임으로 보는 시각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극장은 몰입감과 집단적 관람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서 고유한 역할이 있고, OTT는 시공간의 제약 없이 콘텐츠의 수명과 도달 범위를 넓히는 데 강점이 있다.

'왕과 사는 남자'의 국내 흥행은 극장 콘텐츠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휴민트'의 글로벌 흥행은 OTT가 그 가능성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두 사례는 대립이 아닌 역할 분화와 상생의 구조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한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나 홀드백 규제 요구가 불거질 때마다 소모적인 갈등을 반복하기보다는, 이처럼 실제 시장에서 작동하고 있는 협력 모델에서 실마리를 찾는 것이 더 차분하고 유효한 접근일 것이다.

전 세계의 눈이 한국의 문화적 위상에 주목하는 지금,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한국 영화 산업 전반이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데 필요한 역량은 열린 자세일 것이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 nch020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