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네이티브 시대에 국가 미래를 결정짓는 승부처는 어디일까. AI가 기술을 넘고 기업 운영의 핵심 동력이 'AI 에이전트'로 이동하는 거대한 전환기에 인재 양성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변화의 체감 속도는 빠르지만 정작 나아가야 할 이정표는 안갯속인 상황에서 대한민국 공학교육의 권위자이자 국가 과학기술 정책 설계자인 이해근 고려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를 만나 AI 시대 교육 방향에 대한 해법을 들었다.
그는 AI 네이티브 시대 도래를 앞두고 인터뷰 내내 혁신과 환골탈태를 강조했다. 이 교수는 “AI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변화이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며 “기존 산업화 시대 교육과정을 짜깁기하거나 보완하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근본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식을 암기하고 축적하는 방식에 기반한 산업화 시대의 교육 문법은 점차 효력을 잃는다. 지식과 기술 영역에서 AI가 인간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AI 기술 그 자체'에 머무른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AI 기술 발전은 역설적으로 인간 고유 영역과 본질을 재조명한다. AI가 기술을 대체할수록 인간은 각 분야의 본질을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도메인 역량과 인문학적 사고가 절실해진다. 그는 특정 이공계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균형 있는 배분이 필요하며, 모든 학문이 AI를 기본 도구로 삼아 AI를 입은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교육자원이 AI 개발 분야에 과도하게 쏠리는 구조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현상이다”며 “이공계 중심으로 자원 쏠림 현상이 생기면서 다른 분야가 소외되는 구조는 미래 인재 양성 모델과 거리가 멀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컴퓨터를 열심히 가르치니 컴퓨터학과가 사라지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듯, 인공지능 대학원에서 개발자를 양성하면 결국 그 AI가 개발자 역할을 대체한다”며 “기술 개발에 집중할수록 인간의 역할이 줄어드는 구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극복하기 위해 자원 배분의 재설계, 혁신형 펀드 조성 등을 통해 인간 중심 협업 모델로 AI와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비로소 AI 시대의 새로운 인재양성 모델이 완성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AI가 정답을 찾는 데 강점을 보일수록 인간은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를 설계하는 존재로 전환되고, 결국 문제 해결형 교육이라는 교육의 본질로 회귀한다고 설명했다. 이 대목에서 그가 말하는 미래 인재의 핵심 역량도 윤곽이 드러난다. AI 시대에 필요한 인재 역량은 '지식을 많이 아는 능력'이 아니라 '지식을 의미 있게 활용하는 능력'이다. 문제를 정의하고 서로 다른 학문을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융합적 사고와 창의성, 이를 실현할 윤리와 책임 의식이 그 바탕이다.
이 교수는 한국이 AI 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짚었다. 조선·자동차·반도체 등 원천 기술이 부족했음에도 세계 시장을 선도한 경험이 그 근거다. 그는 “한국의 강점은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실행력”이라며 “AI 모델 개발 경쟁보다 AI를 누가 더 잘 활용하고 응용하는 싸움에서 더 경쟁력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 출발점은 반드시 고등 교육이어야 하고, 특정 학과나 전공의 경계를 허물어 의대·법대·인문대 등 모든 학문이 AI를 기본 도구로 삼는 방향으로 재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듀플러스]이해근 고려대 교수, “AI시대 기존 교육 짜깁기는 필패”…전 학문 'AI 입은 인재 양성'이 승부처](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4/06/news-p.v1.20260406.a0b4003e4fe54eb0b6ed6dfe5191e2db_P1.png)
이러한 변화는 특정 분야만의 과제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 교수는 “이공계 등 일부 학문이 아니라 대학 전체 구성원이 함께 인식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효과는 극대화되며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변화의 속도를 이야기하며 '선도대학'의 역할도 빠뜨리지 않았다. 대학이 먼저 AI 시대 인재 양성 전략의 중심에 서고, 전환의 속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100년 전 산업화라는 격변 속에서 '교육구국(敎育救國)'의 기치로 세워진 대학이 고려대”라며 “인문·사회 분야의 깊이 있는 자산과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한 이공대·의대의 결합이 AI 시대 융합 교육을 실현하는 토대”라고 말했다.
AI는 분석·생성·에이전트·피지컬 AI로 진화하며 교육 방식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고, 인문·공학 융합과 프로젝트 중심 학습으로 재편해야 하는 시점이 오고 있다.
이 교수는 “기존 방식으로는 AI 시대에 적합한 인재 양성이 어렵고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인재 양성은 결국 대학만의 역할이다”며 “대학은 AI를 토대로 연구 경쟁력 강화, 현장형 인재 양성, 사회 문제 해결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전 학문 영역에 자원을 재배분하는 새로운 인재 양성 모델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AI 시대 과제는 어느 한 학문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인문학과 이공학이 함께 질문을 설계하고 해법을 모색할 때, 대학이 그 융합 교육을 선도적으로 구현할 때 국가 경쟁력도 함께 도약한다.
이 교수는 “방향이 옳다면 한국은 언제나 빠른 나라였고 교육이 먼저 바뀌고, 대학이 그 변화를 이끌 때 AI 시대의 새로운 승부가 비로소 시작된다”고 말하며 대학의 새로운 인재 양성 모델과 그 방향에 대해 자신감을 표했다.
◇이해근 고려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국내 공학교육계의 대표 인재양성 권위자다. 고려대 재료공학과 졸업 후 미국 일리노이대학(시카고)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이후 10년간 MIT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갔다. 고려대 공과대학장·공학대학원장·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을 겸임하며 공학교육의 혁신을 주도했고, 제31대 한국공대학장협의회장을 역임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미래인재특별위원회 민간위원장을 역임하며 과학기술인재 육성 지원 기본계획, 글로벌 과학기술 인력 방안 등 국가 차원의 인재양성 정책을 설계해왔다.
권미현 기자 m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