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중등교사 대다수가 현재 공교육 평가 체제가 교육적 성취보다 행정과 민원 대응에 치우쳐 있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중등교사노동조합은 중등교사 22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등 평가 정책에 대한 교사 인식 조사'(3월 6~13일, 온라인 설문) 결과를 7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교사들은 평가 제도가 수업과 학습을 지원하기보다 행정 부담과 분쟁 대응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수학습·평가계획서에 대한 부담이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93%는 계획서 구성과 분량이 과도하다고 답했다.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응답이 1518명, '다소 과도하다'는 응답이 587명이었다. 교사들은 형식적인 문서 작성에 집중되면서 실제 수업과 평가 운영 간 괴리가 발생하고, 수업과 생활지도 등 본질 업무에도 지장을 준다고 답변했다.
평가 관련 민원 대응 과정에서도 교사 보호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평가 민원 발생 시 교육 당국이 교사를 보호하지 못하고 '책임이 개인에게 전가된다는 응답'은 75%에 달했다. 71%의 교사는 사교육 업체가 학교 평가 문항을 무단으로 게시하거나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를 경험하거나 목격했다고 답하면서 평가 문항 저작권 보호 역시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의 인공지능(AI) 활용 수행평가 지침에 대한 현장 수용성도 낮았다. 응답자의 73%는 해당 지침이 '실행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93%는 학교의 실제 학습 과정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교사들은 명확한 기준 없이 정책이 추진되면서 오히려 평가권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주관식 응답에서는 “평가를 교육적으로 설계하기보다 민원을 피하기 위해 설계하고 있다”는 지적이 다수 제기됐다.
![[에듀플러스]전국 중등교사들, “공교육 평가는 교육적 성취보다 행정과 민원 대응 우선”](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4/07/news-p.v1.20260407.2ee506d1e862418c987feb180f01ebcd_P1.png)
수행평가 과잉으로 인한 학생 부담 증가도 중등교사들이 꼽은 주요한 문제다. 수행평가와 지필평가, 서·논술형 평가가 동시에 운영되면서 학생들이 한 학기 내내 평가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학습과 성장보다 평가 대비에 집중하게 되고, 일부 학생은 무기력감을 느끼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수행평가가 학생부와 대입에 연계되면서 '전 과목 상시 경쟁 체제'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고교학점제 실시에 따른 제도 간 충돌도 나타난다. 고교학점제 시행 이후 학생들이 적성과 진로보다 등급에 유리한 과목을 선택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목 선택권은 확대됐지만 상대평가 체제가 유지됐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정책과 교실 사이의 괴리가 공교육 평가의 구조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김희정 중등교사노조 위원장은 “지금 필요한 것은 평가의 이상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방향이 학교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지를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중등교사노조는 '교육부의 평가는 왜 교실에서 무너지는가'를 주제로 연속 토론회를 추진한다. 수행평가와 학생 부담, AI 시대 교육과 평가, 고교학점제와 대입 제도 간 충돌 문제 등을 중심으로 개선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지희 기자 eas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