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최근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라이즈·RISE) 사업을 지역성장인재양성체제(앵커·ANCHOR)로 전환하고 5극3특 연계 '초광역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매우 고무적인 결단이다. 지자체 단위의 분절적 운영으로 우려되었던 '지역 폐쇄성'을 극복하고, 대학의 혁신 자산이 권역을 넘어 국가 경제의 실질적 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정책적 의지 표현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초광역 예산을 어떻게 대학의 기술사업화 현장에 효율적으로 투입하여 '돈이 되는 기술' '지역을 살리는 일자리'로 전환하느냐이다.
지자체 주도 '앵커' 체계의 명암에는 산학협력과 기술사업화 성과지표의 부족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술사업화 성과 지표(KPI)가 지역마다 제각각인 데다, 대부분 '지역 내 취업'과 '정주 여건 개선'이라는 인력양성 프레임에 빠져있다는 점이다.
물론 인재의 지역 정주는 지역발전에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인재가 머물기 위해 그들이 일할 '혁신 기업'과 '미래 산업'이 먼저 존재해야 한다. 대학의 연구 성과가 사업화되고 기업이 탄생하는 역동적인 생태계 없이는 정주 여건 개선만으로 지역 소멸을 막기에 역부족이다. 더욱이 산학협력과 기술사업화에 대한 지자체의 행정 경험과 전문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단순히 건수 위주의 양적 지표에만 치중하다 보면 실질적인 지역 혁신 역량은 오히려 후퇴할 위험이 크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지난 10여년간 브릿지(BRIDGE) 사업 등을 통해 축적된 '한국형 표준 기술사업화 프로세스'와 대학 현장의 노하우가 '앵커' 체계 내에서 즉각적으로 작동되어야 한다. 대학은 유망 기술 발굴부터 실용화 개발(PoC), 비즈니스 모델 고도화에 이르는 전주기적 역량을 검증받았다. 지자체가 단기적인 정량 지표에 매몰되지 않고 실질적인 지역 혁신을 이루려면, 대학이 고심 끝에 만들어낸 이 정교한 성과 창출 매커니즘을 앵커 체계의 핵심 엔진으로 과감히 채택하고 확산시켜야 한다. 검증된 성공 경로를 외면한 채 기초적인 인력 양성에만 머문다면, 지역 경제의 체질 개선이라는 앵커 체계의 본래 목적은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독일의 '아헨 공대(RWTH Aachen)'는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유럽 최대의 기술 클러스터인 '아헨 캠퍼스'의 핵심이다. 이곳은 행정 구역에 연연하지 않고 전 유럽의 수요 기업을 끌어들여 기술을 실전적으로 검증한다. 대학이 주도하는 초광역 협력이 지역 내 수만 개의 고숙련 일자리를 창출한 비결이다.
![[에듀플러스]<칼럼>지역의 벽을 넘는 초광역 RISE, '대학'이라는 엔진에 날개를 달아라](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4/23/news-p.v1.20260423.481ffb15745e42d39e493d4f80a1293d_P1.png)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주 3개 대학의 연합인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RTP)'는 주 정부의 행정 경계를 넘어서는 초광역 거버넌스의 전형이다. 대학이 원천기술을 제공하고, 중앙 정부는 이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시장으로 나갈 수 있도록 가이드했다. 결과적으로 낙후되었던 농업 지대는 세계적인 바이오·IT 허브로 탈바꿈했다.
초광역 '앵커'사업의 성공 조건은 중앙의 전문적 지원 역량 강화다. 초광역 사업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중앙의 역할이 단순한 예산 관리자에서 '전문성 보완과 성과 창출의 조력자'로 진화해야 한다. 현재 17개 지역앵커센터를 지원하는 중앙앵커센터(NRF)에서 이러한 초광역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첫째, 지능형 초광역 매칭 인프라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자체별로 파편화된 정보를 통합하여, 권역 간 경계 없이 최적의 기술과 수요가 만날 수 있는 허브 역할을 중앙 차원에서 수행함으로써 지자체의 경험 부족을 메워주어야 한다.
둘째, 대학 기술의 시장 가치를 보증하는 공동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개별 지자체 역량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도 실증 과정이나 글로벌 표준 대응을 위해, 중앙 정부가 대학의 '죽음의 계곡' 탈출을 돕는 든든한 사다리를 놓아주어야 한다.
셋째, 역량 격차 해소를 위한 표준 성과관리 체계(Rulebook)의 정립이다. 현재 지역마다 천차만별인 산학협력 역량과 지자체의 행정 경험 차이는 초광역 협력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취업률 같은 기초 지표를 넘어 기술의 시장성, 기업가치 성장 등 실질적 혁신 역량을 측정할 수 있는 표준 가이드라인을 중앙에서 제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역량이 부족한 지자체와 후발 대학들도 거점 대학 수준의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할 수 있도록 역량의 상향 평준화(Up-skilling)를 이끌어내야 한다. 표준화된 룰북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모든 지역이 일정한 수준 이상의 혁신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돕는 '성공 레시피'가 되어야 한다.
대학이 뛰어야 지역이 산다. 대학은 지역 소멸을 막는 최후의 보루이자, 신산업을 창출하는 전초기지이다. 2026년 초광역 예산 편성이 대학의 원천기술이 시장으로 흘러가는 혈맥을 뚫어주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지자체는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하고 전문성을 존중하며, 대학은 시장이 원하는 실전형 사업화 모델로 화답하고, 중앙정부는 이 모든 과정이 유기적으로 흐르도록 전문적인 플랫폼을 깔아주어야 한다. '대학이 주도하는 초광역 기술 혁신'이야말로 앵커 사업이 지향해야 할 진정한 종착역이다.
장기술 한국대학기술이전협회장 겸 한양대 ERICA 산학협력단 제2부단장 techjang@hanyang.ac.kr
◆장기술 한국대학기술이전협회장은 한양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지식재산권법을 전공했다. 현재 한양대 ERICA 산학협력단 제2부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양대 기술사업화센터장을 비롯해 기술지주회사 본부장과 부대표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