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의 넥스트 거버넌스] 〈17〉대한민국은 왜 '공공 기업가'를 만들지 못하는가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밀어붙였을 때 가장 결정적인 자원은 자본도 기술도 아니었다. '판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당시 국가 재건의 현장에는 기업가적 감각으로 방향을 설계한 실무형 기획자들이 있었다. 관료이되 관료주의에 머물지 않고, 사명과 현장 감각을 동시에 지닌 인물들이었다. 그것이 '한강의 기적'을 움직인 보이지 않는 엔진이었다.

산업화 시대가 저물고 인공지능(AI) 전환이 본격화된 지금, 대한민국은 선도할 것인가 도태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러나 이번 도전의 조건은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가가 감당해야 할 복잡성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단순한 동원과 지시로 작동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필요한 것은 명령이 아니라 설계다.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하고 정책을 실행 가능한 구조로 바꿔내는 '공공 기업가(Public Entrepreneur)'의 리더십이다.

이 시리즈는 16회에 걸쳐 대한민국 거버넌스의 문제를 짚어왔다. 디지털 전환과 국가 시스템의 괴리, 정치가 과학을 압도하는 구조, 불평등의 심화, 지방 소멸, 공론장 참여의 약화. 공통점은 하나였다. 좋은 제도는 있으나 실행하는 사람이 없고, 전략은 있으나 끝까지 밀어붙일 리더가 없다는 점이다. 제도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시스템에 동력을 불어넣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세계의 선도국들은 이 사실을 일찍 깨달았다. 싱가포르의 경제 도약은 경제개발청(EDB)이라는 조직 자체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을 이끈 현장형 국가 기획자들의 집요한 실행력 덕분이었다. 에스토니아가 디지털 정부를 선도한 것도, 이스라엘이 기술 혁신 국가로 자리 잡은 것도 마찬가지다. 정보기술(IT) 현장을 경험한 실무형 리더와 창업가들이 공공과 민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국가를 설계했다. 결국 국가를 설계한 것은 현장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대한민국은 다르다. 행정고시와 사법시험 중심의 인재 구조는 반세기가 지나도록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법조인이 산업 정책을 설계하고, 행정 전공자가 첨단 기술 전략을 그린다.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구조다. 과거 패스트 팔로어 시대에는 선진국의 설계도를 도입해 효율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핵심이었고, 이 인적구조는 당시 충분히 작동했다. 그러나 이제는 설계도를 가져오는 시대가 아니다. 스스로 기획하고, 이해하고, 실행까지 이끄는 인재가 필요한 시대다.

더 큰 문제는 벤처와 현장 출신 인재들이 공직에 진입할 경로가 좁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감각을 쌓은 인재가 국가에 기여하려 해도, 기존의 선발·임용 구조와 직무 요건은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이는 대한민국 거버넌스의 가장 치명적인 '인재 장벽'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제 구조를 바꿔야 한다. 첫째, '공공 기업가 트랙'을 제도화해야 한다. 현장 경험자가 정부 핵심 보직을 맡고 다시 민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실패 면책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선의를 가진 혁신이 실패했을 때 이를 징계로 연결하는 구조에서는 어떤 도전도 살아남을 수 없다. 셋째, 의사결정 테이블을 바꿔야 한다. 차관·실장·국장급 핵심 보직에 벤처 출신, 공학자, 데이터 전문가가 실질적 권한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국 사람이 결정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사람이 국가를 설계하느냐가 미래를 좌우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제도가 아니다. 국가를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이해하고 설계하며 실행할 수 있는 '공공 기업가'다.

결국 질문은 하나다. 대한민국은 과연 '공공 기업가'를 만들어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