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중동발 에너지·원자재 가격 급등 여파로 고용 불안이 확산되는 업종에 대해 고용유지지원금 지원 문턱을 낮췄다. 매출 감소가 없어도 업종 전반의 경영 악화가 인정되면 지원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선제적 고용 방어'에 나선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항공운송업과 고무·플라스틱 제조업을 대상으로 고용유지지원금 매출액 감소 요건을 완화한다고 5일 밝혔다.
고용유지지원금은 경영상 어려움으로 고용조정이 불가피한 사업주가 해고 대신 휴업·휴직 등 고용유지 조치를 시행할 경우, 정부가 인건비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다.
이번 조치의 핵심은 '매출 감소'라는 정량 기준을 사실상 유연화한 데 있다. 기존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 감소가 있어야 지원 대상이 됐지만, 앞으로는 업종 전체의 위기 상황이 인정되면 개별 기업 매출이 줄지 않았더라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이미 지난 4월 석유정제품 제조업과 화학물질·화학제품 제조업에 동일한 기준 완화를 적용한 바 있으며, 이번에 적용 범위를 항공과 플라스틱 업종까지 확대했다.
항공업계는 중동 전쟁 이후 항공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항공유 가격은 2월 배럴당 89달러 수준에서 3월 평균 194달러, 4월 들어서는 216달러 수준까지 치솟으며 비용 부담이 급격히 커졌다. 노선 감축이 이어질 경우 인력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업계 우려가 이번 정책에 반영됐다.
플라스틱 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나프타 수급 불안으로 원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제조원가가 크게 상승했다. 실제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가격은 2월 톤당 130만~140만원에서 4월 220만~240만원 수준으로 뛰었다. 원가 부담이 급증했지만 제품 가격 전가가 쉽지 않아 수익성 악화와 고용 불안이 동시에 확대되는 구조다.
정부는 이번 조치를 통해 업종 내 연쇄 영향을 고려한 '확장 지원'도 병행한다. 완화 대상 업종과 거래 비중이 50% 이상인 협력업체 역시 지원 대상에 포함해 공급망 전반의 고용 충격을 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단일 업종 지원을 넘어 '산업 생태계 단위'로 고용 안전망을 확장한 조치로 해석된다. 특히 항공·정유·석유화학·플라스틱으로 이어지는 에너지 기반 산업군이 동시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 대응도 연쇄 구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향후 상황에 따라 추가 업종 확대 가능성도 열어뒀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중동전쟁 상황을 감안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현장 상황을 점검하고 업계 의견을 수렴하겠다”라면서 “고용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이 적기에 지원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