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는 3년 뒤에 어떻게 성장해 있을 것 같아?”
지인에게 물었다. 대답은 대체로 비슷했다.
“망하지는 않겠지. 그런데 뭔가 크게 잘될 것 같지도 않아.”
이 말이 아팠다. 기업에 대한 가장 냉정한 평가는 실적표보다 사람들의 기대 속에 먼저 나타난다. “크게 잘될 것 같지 않다”는 말은 단순한 비관이 아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런 상태를 흔히 “비전이 없다”고 표현한다.
비전(Vision)의 어원은 라틴어 videre, 곧 “보다”에서 출발한다. 비전은 눈앞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보는 능력이 아니다.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먼저 보는 능력이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이전에 “휴대전화가 컴퓨터가 되는 미래”를 본 것,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 이전에 “자동차가 에너지 플랫폼이 되는 미래”를 본 것, 엔비디아가 게임용 GPU 너머 “AI 인프라의 심장”을 본 것이 비전이다.
그런데 지금 카카오에 대해 많은 사람이 묻는다. “카카오는 무엇을 먼저 보고 있는가?” 이 질문에 선명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카카오는 한때 한국 디지털 산업의 가장 강력한 상상력이었다. 카카오톡은 통신사가 지배하던 문자 시장을 뒤흔들었다. 사람들은 문자 한 통의 가격을 계산하던 시대에서, 대화가 인프라가 되는 시대로 넘어갔다. 카카오택시,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지는 모두 “일상의 불편을 플랫폼으로 바꾼다”는 하나의 관점에서 출발했다. 카카오는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생활의 운영체제처럼 확장됐다.
그러나 그 확장은 어느 순간 '혁신'이 아니라 '문어발'이라는 언어로 포위됐다. 플랫폼이 커질수록 사회적 책임도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책임을 묻는 방식이 기업의 미래 설계 능력까지 마비시키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카카오는 최근 몇 년간 수사, 규제, 여론 압박의 중심에 섰다.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관련 시세조종 의혹에서 김범수 창업자와 카카오 법인 등은 2025년 10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법원은 검찰 주장을 입증할 충분한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검찰은 항소했고 사건은 아직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무죄냐 유죄냐”가 아니다. 기업은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시간과 신뢰와 기회를 잃는다. 글로벌 시장에서 AI, 콘텐츠, 플랫폼 전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뀐다. 메타는 AI 인재 확보를 위해 경영진에게 수억 달러 규모의 주식 보상 패키지를 제시하고, 구글·테슬라·엔비디아는 막대한 보상과 장기 인센티브로 핵심 인재를 묶어 둔다. 메타의 경우 2026년 경영진 보상에 대규모 스톡옵션을 도입했고, 그 보상은 주가 목표 달성과 연동되도록 설계됐다.
이것이 글로벌 테크 기업의 정상적인 문법이다. 스톡옵션은 회사를 팔아먹는 장치가 아니라, 회사의 미래 가치에 인재의 이해관계를 묶는 장치다. 미국의 NCEO도 스톡옵션을 일정 가격에 회사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로 설명하며, 주가가 오를 때 임직원이 그 상승분을 공유하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스톡옵션은 현금이 부족한 스타트업이 세계 최고 인재를 끌어들이는 핵심 수단으로 작동해 왔다.
물론 스톡옵션이 언제나 정당한 것은 아니다. 행사 시점, 공시, 내부정보 이용 여부, 성과와 보상의 균형은 엄격히 따져야 한다. 그러나 적법하게 부여되고 적법하게 행사된 스톡옵션까지 “도덕적 죄”처럼 취급한다면 혁신 기업은 인재를 설득할 언어를 잃는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성과를 낸 경영진과 핵심 인재에게 주식 보상을 주는 것이 비정상이 아니라 정상이다. 비정상은 보상 자체가 아니라, 성과 없는 보상·불투명한 보상·책임 없는 보상이다.
더 아픈 것은 카카오 내부에서도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회사가 외부 압박으로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노조와 회사가 정면으로 부딪히면 시장은 이렇게 읽는다. “이 회사는 지금 미래를 만드는 중인가, 아니면 과거의 책임을 두고 서로 싸우는 중인가.” 노동조합의 문제 제기는 존중받아야 한다. 구성원의 고통, 보상의 공정성, 조직문화의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주가 하락으로 주주들의 한숨이 깊고, 회사의 성장 서사가 약해진 상황에서 보상 요구만 전면에 보이면 공감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시위는 힘을 보여주는 행위인 동시에 동의를 구하는 행위다. 동의를 얻지 못한 힘은 설득이 아니라 압박으로 읽힌다.
글로벌 기업들도 노사 갈등을 겪는다. 아마존, 애플, 구글에서도 노동조합과 조직문화 갈등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 기업은 투자자에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계속 제시했다. 갈등이 있어도 AI, 클라우드, 반도체, 우주, 전기차 같은 미래 언어가 있었다. 그래서 시장은 불안을 느끼면서도 기대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카카오에 지금 필요한 것도 바로 그 언어다. “우리는 억울하다”만으로는 기업이 회복되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무엇을 보겠다”가 있어야 한다. 카카오가 다시 살아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AI 시대의 카카오톡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카카오톡은 단순한 메신저가 아니라 한국인의 생활 데이터와 관계망이 축적된 인프라다. 둘째, 계열사 정리는 축소가 아니라 집중의 언어로 설명돼야 한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이길 수 있는 전장으로 병력을 재배치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셋째, 보상과 책임의 기준을 투명하게 세워야 한다. 스톡옵션은 죄가 아니다. 다만 성과와 연결되어야 하고, 주주와 구성원 모두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카카오의 초기를 가까이에서 보았다. 그래서 더 아프다. 카카오는 원래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먼저 본 회사였다. 문자 요금 뒤의 불편을 보았고, 택시 호출 뒤의 비효율을 보았고, 금융과 콘텐츠와 커머스의 새로운 연결 가능성을 보았다. 카카오의 진짜 위기는 적자가 아니다. 수사도, 노조도, 여론도 아니다. 가장 큰 위기는 사람들이 더 이상 카카오가 무엇을 먼저 보고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비전은 선언문이 아니다. 먼저 보는 능력이다. 그리고 먼저 본 것을 사람들에게 믿게 만드는 힘이다.
카카오가 다시 회복하려면 억울함을 넘어야 한다. 방어를 넘어야 한다. 과거의 상처를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미래의 장면을 보여줘야 한다. 사람들이 다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카카오는 망하지 않는 회사가 아니라, 다시 크게 될 수 있는 회사다.”
그 문장이 보이는 순간, 카카오의 비전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박용후 / 관점 디자이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