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그래핀 습윤성' 10년 논쟁 머신러닝으로 풀어

뛰어난 강도와 전기 특성을 자랑하는 그래핀과 물의 상호작용, 즉 표면 '습윤성'에 대한 10년이 넘는 논쟁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일부 실험에서는 물이 그래핀 위에서 방울처럼 맺혀 소수성(물과 친하지 않은 성질)을 보였지만, 다른 실험에서는 물이 퍼지며 친수성(물과 친한 성질)을 나타냈다. 이런 상반된 결과에 그래핀이 물에 대해 어떤 성질을 가지는지 명확히 규명되지 못했다. 특히 그래핀은 원자 한 층 두께에 불과해, 아래 놓인 바탕 재료(기판)의 성질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젖음 투명성' 가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기초과학연구원(IBS·원장 직무대행 김영덕)의 조민행 분자 분광학 및 동역학 연구단장(고려대 화학과 교수)과 슈테판 링에 고려대 화학과 교수팀이 결함이 없는 순수 그래핀은 소수성이며, 미시적으로도 젖음 투명성을 갖지 않음을 확인했다.

머신러닝 기반 분자동역학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그래핀-물 계면을 원자 수준에서 정밀 분석한 결과다.

단일층 그래핀과 다층 그래핀에서의 물 침투 차이
단일층 그래핀과 다층 그래핀에서의 물 침투 차이

순수 그래핀 표면 근처의 물 분자들은 수소 결합을 형성하지 않는 'dangling O-H 결합'을 보였으며, 이는 소수성 표면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이다. 또 그래핀 층수가 증가할수록 이러한 특성은 더욱 뚜렷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기존 실험 결과와의 불일치 원인이 그래핀과 기판 사이에 갇힌 물 분자에 있음을 밝혀냈다. 친수성 기판 위에 놓인 단일층 그래핀의 경우, 공기중에 포함된 수증기 형태의 물 분자들이 그래핀 아래로 쉽게 침투하여 얇은 층을 형성한다. 때문에 그래핀 위의 물과 아래에 갇힌 물의 신호가 동시에 측정되며, 분광학적 신호가 서로 일부 상쇄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효과로 그래핀의 본래 소수성 분광학 신호가 약화되면서, 그래핀이 친수성처럼 보이는 결과가 나타난다.

반면, 그래핀 층이 두꺼워질수록 물이 아래로 침투하는 것이 열역학적으로 불리해지며, 이러한 갇힘 현상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 결과 다층 그래핀에서는 숨겨진 물의 영향이 사라지고, 그래핀의 본래 소수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는 단일층과 다층 그래핀이 서로 다르게 보였던 기존 실험 결과를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핀의 소수성 규명은 그래핀 기반 기술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나노유체 소자, 담수화 막, 에너지 저장 장치, 수소 연료전지 등 다양한 응용 분야에서 계면의 물 거동은 핵심 요소이다. 이번 연구는 매우 얇은 물 층이라도 계면 특성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음을 확인하여 향후 소자 설계 시 이를 고려해야 함을 시사한다. 아울러, 복잡한 계면 현상을 원자 수준에서 정밀하게 분석하는 데 머신러닝 기반 시뮬레이션이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조민행 연구단장은 “이번 연구를 통해 그래핀-물 계면에서 나타나는 상반된 실험 결과의 원인을 명확히 규명했다”며 “특히 그래핀 아래에 존재하는 물의 역할을 밝힘으로써 그래핀의 본질적인 습윤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4월 2일 온라인 게재됐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