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부의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라이즈)가 '앵커(ANCHOR) 사업'으로 재정비되면서 정책 방향 변화에 교육계·지자체·대학가의 관심이 쏠린다. 명칭 변경을 넘어 대학·산업·평생교육·지역 정주를 연결하는 국가 단위 플랫폼 사업으로 확장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평가다.
학령인구 감소와 지방소멸 위기, 산업구조 재편, 인공지능(AI)·DX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대학을 지역혁신의 '거점(anchor)'으로 삼겠다는 전략이 보다 선명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라이즈 사업은 지자체 중심 대학 재정지원 체계 개편이 핵심이다. 교육부가 보유하던 대학 지원 권한 일부를 광역지자체로 이관하고, 지역 전략산업과 대학 교육 연계가 주요 골자다. 현장에서는 지자체별 추진 역량 차이, 단기 성과 중심 구조, 대학 간 경쟁 심화, 평생교육 및 산업현장과의 연계 부족 등 한계도 적지 않았다.
교육부는 '앵커사업'이라는 새 프레임을 통해 방향성을 재정립 중이다. 단순한 지역혁신이 아니라 지역의 산업·교육·고용·정주를 연결하는 장기 생태계 구축사업으로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교육계 관계자는 “라이즈가 대학 재정지원사업의 성격이 강했다면, 앵커사업은 지역 전체를 움직이는 플랫폼 전략에 가깝다”며 “대학이 지역혁신의 중심축이자 연결 허브 역할을 수행하도록 구조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앵커사업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평생학습'이다. 기존 학위체계만으로는 AI·디지털전환 시대의 인재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됐다. 성인학습자 증가와 직무 재교육(Re-skilling)·전환교육(Upskilling)·리커런트 교육(Recurrent Education) 확대는 대학의 역할 자체를 바꾸고 있다.
앵커사업은 △재직자 교육 △지역 산업 맞춤형 마이크로디그리 △온라인 기반 평생교육 △산학연계 프로젝트형 교육 △디지털 기반 학습이력 관리 등을 핵심 축으로 삼을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부 내부에서도 '학위 중심 체계'에서 '역량 중심 체계'로의 전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듀플러스]“취업·평생교육까지 맡는다”…대학 역할 바꾸는 '앵커사업'](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5/12/news-p.v1.20260512.a3116e3958f84d0f8c4fa201225b62c7_P1.png)
이 과정에서 디지털배지 등 학습이력 관리체계가 주목된다. 국제표준 기반 디지털배지(Digital Badge)가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배지는 학습자의 교육 이수, 프로젝트 수행, 직무역량, 현장경험 등을 데이터 형태로 기록·검증하는 기술이다. 기존 수료증과 달리 메타데이터 기반으로 학습과 역량의 세부 정보를 담고, 기업·기관 간 연계 활용도 가능하다. 미국·유럽에서는 대학·기업·정부가 연계된 학습·고용 데이터 생태계가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국내는 레코스가 대표적인 국제표준 디지털배지 플랫폼 기업이다. 아시아 최초 1EdTech(Open Badges 2.0·3.0) 국제표준 인증을 획득했으며, 국내 대학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대규모 디지털배지 발급 체계를 구축했다. 연세대·한양대·이화여대·경희대·성균관대·KAIST 등이 레코스 기반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으며, 서울시교육청·인천시교육청 교사연수, 춘천시 평생학습 등 공공영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노원석 레코스 대표는 “인공지능(AI) 시대에는 학습 과정과 경험, 프로젝트 수행 이력까지 모두 데이터화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앵커사업이 본격화되면 대학·기업·지자체·평생교육기관을 연결하는 국가 단위 학습이력 생태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배지는 단순 수료증이 아니라 개인의 역량과 성장의 흐름을 증명하는 데이터 인프라”라며 “지역 기반 인재정책과 평생학습 정책의 핵심 연결도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라이즈가 앵커사업으로 재전환되는 과정에서 해결 과제도 적지 않다. 지역별 산업 기반과 재정 여건 차이가 큰 만큼 사업 격차 확대가 우려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형 대학과 중소 대학 간 양극화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단기 성과 위주 평가 구조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 지역혁신은 최소 5~10년의 중장기 접근이 필요하지만 현행 구조는 연차평가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앵커사업 성공을 위해 △지역 산업과의 실질적 연결 △기업 참여 확대 △평생교육 체계 고도화 △데이터 기반 학습이력 관리 △대학 간 연합체계 구축을 핵심과제로 꼽는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앵커사업이 디지털 기반 평생학습 체계와 연결되면서 국내 고등교육 정책의 방향 자체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권미현 기자 m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