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거래소가 코스닥 시장을 '프리미엄·스탠더드·관리군' 등으로 나누는 승강제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벤처·투자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장 활성화와 기관투자자 자금 유입이라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상위 100개 기업 중심의 구조 개편이 오히려 대다수 코스닥 기업에 '낙인효과'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르면 오는 10월부터 코스닥 시장 승강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개편안은 코스닥 시장을 프리미엄, 스탠더드, 관리군 등 3개 리그로 구분하고 기업 규모와 실적, 지배구조 등에 따라 시장 간 이동을 허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거래소는 다음 달 설명회와 의견 수렴을 거쳐 오는 7월경 개편 방향을 공개할 예정이다.
벤처업계에서는 제도 도입 속도와 방식 모두 문제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당초 프리미엄군에 80~160개 수준이 거론되다가 최근 100개 안팎으로 좁혀지는 안이 유력해졌는데, 결국 나머지 1700여 개 기업에는 '비우량' 낙인이 찍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상위 100개 중심으로 인덱스와 ETF 펀드를 만들면 기관 자금은 유입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한 대책이 없다”며 “벤처자본 시장으로 출발한 코스닥에서 단순 시가총액과 외형 중심으로 줄 세우는 것이 과연 맞는 방향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의 역동성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 101등인 기업이 나중에 시장 1등 기업으로 성장할 수도 있는데, 현재의 외형만으로 선을 긋는 것은 벤처 생태계 철학과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벤처캐피탈(VC) 업계 역시 강하게 반발했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졸속 정책에 가깝다”며 “기준 설정 과정에서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고, 향후 행정소송 등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또 다른 초기 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재 코스피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다 끌고 가는 것처럼, 코스닥도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며 “시장을 구분하는 것은 코스닥 전체 시장을 올리는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코스닥 상장사들 사이에서도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 코스닥 상장사 CEO는 “지난주 시가총액 기준으로 100위 안에 들었다가 이번 주는 밀려났다”며 “어떤 시점을 기준으로 프리미엄군이 결정되느냐에 따라 기업 가치와 투자 환경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초창기 프리미엄군 편입 여부가 기관 자금 유입과 직결될 수 밖에 없다”며 “사실상 기업 운명이 달린 문제로 보다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벤처투자 및 코스닥 업계는 이날 코스닥 우량기업의 코스피 이전 상장을 자제해달라는 공동 성명도 발표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와 코스닥협회, 벤처기업협회는 공동 호소문을 통해 “코스닥은 단순 자금조달 시장이 아니라 혁신·벤처기업이 도약하는 플랫폼”이라며 “우량기업의 이탈은 시장 신뢰와 혁신 생태계 전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현재까지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이전 상장한 기업은 총 54개사에 달한다. 업계는 최근 코스피 이전을 검토했던 바이오 기업 알테오젠 사례 등을 계기로 우량기업 유출 우려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