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지난 10년간 고등교육 재정을 늘려왔지만 대학 교육·연구 경쟁력을 끌어올리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정 규모 자체가 충분하지 않은 데다, 확대된 예산도 장학금과 국립대 운영이라는 사업 중심으로 배분되면서 대학의 연구 역량 강화와 교육환경 개선 등 본연의 기능에 대한 강화는 뒷순위라는 분석이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최근 교육개혁컨퍼런스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고등교육 예산은 2015년 10조5000억원에서 2025년 15조5000억원으로 10년간 48% 증가했다. 외형상 투자 규모는 늘었지만 10년간 증가 폭 자체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데다, 실제 재원 배분 구조를 들여다보면 한계는 더욱 선명하다.
2025년 교육부 고등교육 부문 재정지출 구성을 보면 맞춤형 국가장학제도가 37%, 국립대학 운영지원이 32%로 전체의 70%에 육박한다. 반면 대학역량강화는 23%, 학술연구 역량강화는 7%에 불과하다. 지난 10년간 대학역량강화 비중은 확대됐지만, 학술연구 비중은 9%에서 7%로 오히려 축소되면서 대학의 연구 역량과 교육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재원이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려난 셈이다.
이 같은 구조는 학생들이 체감하는 교육 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 강의와 연구 등 대학 본연의 기능에 투입되는 재원이 제한적인 만큼, 교수 1인당 학생 수와 연구 인프라, 산업 연계 실습 여건 등 학생이 직접 체감하는 교육환경 개선 투자 역시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권 한 사립대 관계자는 “대학 경쟁력은 수업의 질과 연구·실습 환경에서 나오는데 현재 재정 구조는 이를 뒷받침하기 어려운 형태”라며 “교수 확보나 첨단 실험·실습 장비 구축, 산업 연계 교육 확대 등에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재원은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계획서 중심의 사업 선정과 평가 구조가 반복되면서 대학들이 교육 혁신 자체보다 사업 수주와 행정 대응에 더 많은 역량을 투입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업도 단기·개별 과제로 쪼개져 중장기적인 투자와 성과 축적이 어렵고, 등록금 동결 장기화까지 겹치면서 대학이 교육과 연구 혁신에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은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최정윤 KEDI 고등·평생교육연구본부장은 “대학 연구와 교육에 직접 반영되는 예산 규모와 비중은 매우 작은 수준”이라며 “컴퓨터·기자재 같은 교육 인프라 투자나 교육 프로그램, 연구 환경 개선 등에 투입할 수 있는 재원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학역량강화 예산이 늘더라도 대부분 목적형 재정지원사업 형태로 운영되는데 대학이 교직원 인건비나 교수 보상, 상시적인 교육·연구 환경 개선 등에 자율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며 “교수들도 사업 기획과 학생 지원에 많은 시간을 투입하지만 이에 대한 보상 체계는 제한적이어서 교육 선순환이 일어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산학협력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난다. 2012년 이후 연간 3000억 원 이상이 투입된 산학협력 사업은 외형적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캡스톤디자인 이수 인원은 2012년 4만2000명에서 2021년 26만명으로 급증했고, 기술이전율은 99.8%에 달한다. 산학협력단, 기업협업센터, 가족회사 등 대학 내 조직 체계도 확대됐다.
다만 외형적 성과가 실제 산업 경쟁력이나 교육 혁신으로 이어졌는지는 불투명하다. 협약·방문·단기 실습 중심의 산학협력이 지역 산업과 고용 구조에 실질적 변화를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실증 자료는 충분하지 않다.
최 본부장은 “재정 확대를 통해 기술사업화 실적은 증가했지만, 이런 산업 역량이 학생들의 직무 역량 향상이나 지역 경제 활성화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실증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며 “단순한 재정 확대를 넘어 산학협력 사업 참여 학생들의 취업 성과나 지역 산업 기여 효과 등 의미 있는 성과를 축적할 수 있도록 함께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등교육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한 재정 확대를 넘어 대학의 자율성과 안정적 재정 기반을 함께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함께 나온다. 이를테면 1인당 GDP 대비 고등교육 공교육비를 OECD 수준으로 확대하고,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을 통해 안정적인 고등교육 전용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최 본부장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혁신 역량을 축적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며 “안정적인 고등교육 재정 확대와 함께 단계적인 등록금 자율화, 대학 자체 수익사업 규제 완화 등 재원 다각화를 위한 자율성 확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안정적인 재정 기반이 함께 마련돼야 고등교육 투자가 대학 경쟁력과 학생들의 교육 경험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권미현 기자 m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