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세청이 중동 정세 불안에 대응해 원유와 석유화학 원료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규제 완화에 나섰다.
미국산 원유 수입 절차를 간소화하고, 호주산 나프타 대체품에 대한 비관세 장벽도 제거해 국내 에너지·석유화학 업계 지원을 강화한다.
관세청은 미국산 원유에 대한 FTA 직접운송 특례를 시행하고, 호주산 나프타 대체품의 품목분류를 신속히 결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올해 4월 캐나다산 원유의 국내 무관세 도입 확대를 위해 원산지 입증 특례를 추진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캐나다산 원유 수입 규모가 연간 최대 3300만 배럴까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캐나다산 원유는 미국산 경질유 등과 혼합(블렌딩)할 경우 중동산 중질유와 유사한 특성을 구현할 수 있어 국내 정유사들이 별도 설비 개조 없이 기존 공정에서 처리할 수 있다.
관세청은 이번 조치가 단순한 수입선 다변화를 넘어 중동 의존도를 낮추는 공급망 대체 효과까지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도입한 '원유 직접운송 특례'는 FTA 특혜세율 적용의 걸림돌로 지적돼 온 직접운송 원칙을 완화한 것이 핵심이다.
그동안 미국산 원유가 제3국을 경유하거나 중간 항구에서 일부를 하역할 경우 직접운송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FTA 관세 혜택을 받기 어려웠다. 이에 따라 정유업체들은 전체 운송경로와 경유국 세관의 입증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관세청은 특례를 통해 기존 복잡한 서류 중심 심사 대신 선박 위치정보(AIS), 원유 계측 데이터 등 실제 운송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만으로 직접운송을 인정하기로 했다.
중동 외 지역의 중질유 확보에도 특례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산 원유 운반선이 중질유 생산국을 경유해 추가 선적을 하더라도 미국산 원유 부분에 대해 FTA 특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석유화학 업계를 위한 지원책도 마련했다. 호주산 나프타 대체품에 대해 품목분류 사전심사 패스트트랙(Fast Track)을 적용, 기존 원유(HS 2709호)가 아닌 석유제품(HS 2710호)으로 신속 분류했다.
그동안 나프타 대체품은 세계관세기구(WCO) 기준이 불명확해 주로 원유로 분류했으며, 이에 따라 3% 관세와 비축 의무가 적용돼 업계 부담이 컸다.
이번 조치로 호주산 나프타 대체품은 무관세 수입이 가능하고 비축 의무도 면제된다. 이에 따라 수입 즉시 생산공정에 투입할 수 있게 되면서 종량제 쓰레기봉투와 주사기 등 생활 밀접형 석유화학 제품 생산 안정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관세청은 호주산 나프타 대체품이 나프타 함량 80~90% 수준의 고품질 원료로 평가받고 있으며, 조치를 통해 연간 약 250만톤 규모의 대체 원료 확보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난해 국내 석유화학 업계 전체 나프타 수입량의 약 16%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밖에 말레이시아산 원유의 원산지증명서(CO) 발급 지연 문제 해결에도 나선다. 현재 말레이시아산 원유는 CO 발급에 평균 6개월 이상이 소요돼 수입업체들이 우선 관세를 납부한 뒤 사후 환급을 받아야 하는 부담을 겪고 있다. 관세청은 말레이시아 당국과 협의를 통해 CO 발급 지연 원인을 파악하고 발급 기간 단축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종욱 관세청장은 “중동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3월 '중동상황 비상대응 TF'를 구성해 납기연장, 분할납부, 담보 생략, 운임 상승분 과세가격 제외, 경제안보 품목 신속통관 등 긴급 지원책을 시행해왔다”며 “앞으로도 공급망 전반의 규제 혁신을 지속해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에너지 수급 안정에 행정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양승민 기자 sm104y@etnews.com